필자는 가끔 중국을 방문한다. 관광 목적도 있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나 현지인들에게서 중국 경제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욱 생생한 것은 시각적인 경험이다. 상하이(上海)에 갈 때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본다. 직접 가서 보면 중국, 베트남 등 신흥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펀드 열풍이 불었던 2007∼2008년 간접투자자금이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으로 자꾸 떠났던 것도 한국 경제에서 채워지지 않은 성장에 대한 욕구를 찾으려는 바람이었다고 본다.
신흥국가들의 성장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투자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를 떠올려 보자. 중국과 베트남처럼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는 1970∼1990년대였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고 있었고 매년 일자리 수십만 개가 새로 쏟아져 나왔다. 요즘 같은 청년실업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주식투자로 안정적 수익을 얻기는 힘들었다. 1980년대 후반의 반짝 강세장을 제외하면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500∼1,000의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시점에 사서 좋은 시점에 파는 마켓타이밍(Market Timing) 전술이 중요했지, 주식을 오랫동안 보유하는 장기투자로는 수익을 얻기 힘들었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주식시장은 대단히 불안정했다.
1980, 90년대 한국의 경험은 요즘의 해외 신흥시장 투자에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서 주가가 안정적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성장률이 높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돈을 벌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장사를 하건 물건을 만들건 돈을 벌 기회가 많다. 주식시장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기회가 많아 경제적 자원은 사회 전체로 골고루 배분된다.
선진국은 다르다. 경제적 자원은 이미 최적에 가깝게 배분돼 있어 뭘 해도 초과 수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좀처럼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든 계층 고착화의 시대가 열린다. 실물경제에서 이익을 올릴 기회가 크지 않으면 그때서야 금융시장으로 자원이 몰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는 시기는 역설적으로 실물경제의 역동성이 둔화되는 시점인 때가 많다. 한국 증시가 500∼1,000의 장기 박스권을 넘어섰던 시기도 성장에 대한 회의감이 컸던 2005년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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