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문제가 생겼는가? 두려워 말고 정면돌파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 전쟁 역사로 본 위기해결 경영

위급한 상황에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겨를이 없다. 사정이 너무 급박해서 닥쳐올 피해를 수습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제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다면 위기를 벗어날 독창적인 해법을 고안할 수 있다.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문제 해법의 한계를 넘어선 사례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중국 한(漢)나라 때 명장 이광(李廣)의 사례다. 한 경제(景帝)가 즉위하자마자 북쪽의 흉노족이 쳐들어왔다. 선봉장으로 전장에 도착한 이광은 기병 100여 명만 데리고 주변을 순찰하다가 코앞에서 수천 명이나 되는 흉노족 기병들과 맞닥뜨렸다.

깜짝 놀란 부하들은 이광에게 속히 도망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광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적들을 향해 말을 달려라!” 부하들은 ‘이젠 죽었구나’ 하며 벌벌 떨었지만 지엄한 명령인지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적진 바로 앞까지 돌진한 후 이광은 “모두 말에서 내려라. 그리고 안장을 해체해서 바닥에 내려놓아라”고 명령했다. 부하들이 웅성거리며 주저했다. 이광은 “안심해라. 적들은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면 필시 무슨 계략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섣불리 달려들지 못할 게다. 우리가 자기들을 유인하는 줄 알 테니까 말이다”라고 다독였다.

이광의 예상은 적중했다. 흉노족 병사들은 엉거주춤하다가 말 머리를 돌려서 물러갔다. 흉노족 장군은 이광의 기병들이 자기들을 매복 부대가 있는 곳까지 유인해서 기습을 감행하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이광의 부대는 안전하게 본진으로 돌아왔다.

적과 마주쳤을 때 이광의 부하들은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달아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문제를 정의하면 사고가 경직돼 도망가는 것 이외에는 해법이 없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적의 코앞에서 발각된 터라 도망을 쳐봤자 빠르기로 유명한 흉노족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광은 부하들과는 다르게 문제를 창의적으로 정의해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냈다. 그는 ‘적이 우리의 의도를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적에게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 여유를 부리는 척하면 흉노족은 이광 부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결국 흉노족은 매복병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손무(孫武)는 그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이렇게 말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놓은 뒤 적과의 싸움을 추구한다.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승리를 추구한다.”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손무의 말은 “유능한 문제 해결사는 해결하기 쉽도록 문제를 잘 정의한 뒤 문제를 푼다. 무능한 문제 해결사는 문제를 정의조차 하지 않은 채 해결하려고 덤벼든다”로 해석된다.

문제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든지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새롭게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정식 블로거 www.infuture.kr/574
정리=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3호(2010년 3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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