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처음으로 ‘은행장 대사(大使·CEO’s Ambassador)’라는 직함이 등장했습니다.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이 자리를 만든 배경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에 더 깊게 뿌리내리고 싶은 한 외국계 은행장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은행장 대사직을 신설한 곳은 영국계 SC제일은행입니다. 리처드 힐 행장은 지난주 임원 인사에서 총괄조정부를 담당하는 김진관 상무를 부행장급인 은행장 대사로 발탁했습니다. 그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직함은 SC제일은행 내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은행 관계자들이 전하는 발탁 배경은 이렇습니다. 힐 행장은 2007년 1월 SC제일은행의 최고재무관리자(CFO) 및 전략담당 총괄 부행장으로 한국에 처음 부임했습니다. 그의 ‘한국 사랑’은 각별합니다. 서울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국어를 공부해 지금은 ‘생활 한국어’를 무리 없이 구사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외국인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적 상황에 맞는 토착경영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절박감이 대사 자리를 신설한 이유죠.
이런 상황에서 김 상무가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대(對)정부 업무 및 홍보 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해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죠. 김 대사는 앞으로 한국의 금융소비자 특성에 맞는 영업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힐 행장을 수행해 각종 대외행사에 참석하거나 대신 참석하면서 외부의 목소리를 은행 내부에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번 인사 실험은 향후 SC제일은행의 영업 전략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됩니다. 대개 외국계 금융회사 CEO 중에는 대외 활동을 꺼리는 ‘은둔형’이 많지만 힐 행장은 한국 고객과의 소통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김 대사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는 “은행원 생활 31년 동안 이런저런 CEO를 많이 모셨지만 힐 행장처럼 한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힐 행장이 성공하는 CEO가 될 수 있도록 잘 보필하는 게 나의 최대 임무”라고 말하더군요. ‘한국인의 은행’으로 거듭나려는 SC제일은행과 힐 행장의 새로운 시도가 꼭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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