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 하이드’ 온라인게임]<上>한국형 게임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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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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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편 vs 네편’ 똘똘뭉쳐 싸우는 가상현실,세계를 사로잡다

“집단전투 통해 ‘혈맹’ 형성
자신 희생시키며 감동 느껴
‘파시즘적 집단주의’ 지적도”


1998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는 2010년에도 여전히 인기를 끈다. 12년째에 접어들어 요즘 나오는 새로운 게임들과 비교하면 시각 효과도 떨어지고, 게임의 재미로 손꼽히는 현란한 기술도 부족하다. 하지만 리니지 매출은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던 같은 회사의 ‘아이온’ 매출을 한때 따라잡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 게임의 고유한 특징 덕분으로 해석한다. 사용자끼리 만들어내는 끈끈한 커뮤니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임회사의 독특한 운영방식 및 게임 설계가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문화산업은 ‘할리우드’를 앞세운 미국이 주도했다. 게임의 시대도 마찬가지여서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과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등이 모두 미국산이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의 세계로 범위를 좁히면 한국의 위치는 미국 못지않다. ‘리니지’와 ‘아이온’,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 다양한 한국 게임이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의 영향력은 미국 이상이다.

○ 온라인게임이라는 세계

“리니지는 화려한 그래픽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떠날 수가 없어요.”

리니지의 ‘하딘서버’ 서버지기인 김라희 씨(25)의 얘기다. 서버는 물리적으로는 수천 명의 사용자를 수용하는 컴퓨터를 뜻한다. 하지만 게임 사용자들에게 서버는 하나의 가상세계다. 수천 명의 사용자끼리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삶을 창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늘씬쭉쭉빵빵’이란 이름으로 리니지를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정이 들었고,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었으며 상반기에는 엠티도 갈 계획이다. ‘혈맹’이라 불리는 게임 속 동료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이런 인기는 비슷했다. 대만의 리니지 서비스는 한국의 게임 운영진이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줬고 이벤트를 통해 혈맹들의 오프라인 모임도 게임회사가 주선하면서 커뮤니티를 키워낸 서비스다. 이 때문에 리니지는 대만에서도 온라인게임의 ‘롤 모델’이 돼 10년째 인기 순위 상위에 올라 있다. 리니지 해설을 위한 잡지가 여전히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다.

이런 유대감을 만들어낸 건 리니지에서 처음 시작된 ‘공성전’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리니지는 만화가 신일숙 씨가 그린 같은 이름의 원작만화의 스토리대로 진행되지만 사용자들은 게임 속에서 원작의 갈등 구도 대신 ‘혈맹’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자신들 사이의 대결 구도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기꺼이 혈맹 사이의 전투인 공성전에서 다른 혈맹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이런 온라인게임의 특성에 대해 “온라인게임이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오락”이라고 말했다.

“서양게임은 스토리텔링 중시
1000만명 가입 워크래프트
탄탄한 구성으로 인기 끌어”

○ 디지털 스토리텔링

반면 서양 게임은 스토리를 중시한다. 미국의 게임회사 블리자드가 만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매월 꼬박꼬박 돈을 내고 즐기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게임이다. 이 게임의 세계는 굉장히 방대해 게임 홈페이지에 간략히 압축해 놓은 ‘배경 설명’만도 단편소설 분량인 200자 원고지 300장에 이른다.

리니지와 달리 이 게임의 대결 구도는 일종의 스포츠다. 리니지에선 다른 사용자와의 전투에서 패하면 경험치가 떨어지고 영지를 뺏기는 등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다. 하지만 월드 오프 워크래프트에선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다른 사용자와의 전투에서 패해도 명예점수를 약간 잃는 것 외에는 별로 손해를 보는 게 없다. 그 자리를 탄탄한 스토리가 대신한다.

국내 게임도 최근 이런 방식을 배우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한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아이온’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관을 통해 아시아 시장을 사로잡았다. 이 게임의 배경 스토리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어느 순간 갈라져 싸우게 된 천족(天族)과 마족(魔族)의 멈출 수 없는 전쟁이다. 이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한 은유로 읽히며 게임 사용자들의 공감을 샀다.

○ 동양적 집단주의

하지만 한국 게임의 독특한 게임 속 갈등관계는 곧 ‘우리 편’에 대한 과한 애정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게임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 흔히 등장하고, 게임 속에서 ‘긴급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올라오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이머들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편 가르기’ 정서를 확산시키는 ‘파시즘적 집단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상우 교수는 “게임 속 사회관계는 긍정적인 모습의 한편으로 현실 사회의 관계가 지나치게 단순화돼 때로는 ‘우리 편’만 챙기는 파시즘적 집단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게임을 통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이들이 긍정적인 세대인지 또는 현실을 게임의 프리즘으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문제 있는 세대인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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