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병원 근무 경험 살려 의료기 상담 쉽게 또 쉽게”
“고령환자 느는 것 보면서 실버숍 아이템 얻었죠”
“시니어 창업이란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두 번째 인생을 계획하는 것”
《부산 부산진구에서 개인용 생활의료기기 유통업체 ‘이원건강 의료기’ 부전점을 운영하는 김이도 대표(60)는 은퇴 전 30여 년간 병원 종합검사실에서 일했다. 종합검사실 근무 경험은 의료기 사업을 좀 더 빨리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됐다.》
○ 종합검사실 경험으로 진입장벽 뚫어
“혈당이 dL당 140∼150mg으로 나오는데 병원에 가봐야 할까요?” 얼마 전 혈당측정기를 사 간 고객이 근심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정상적 혈당 수치는 dL당 70∼110mg. 정상보다 조금 높은 수치가 나와 겁이 난 것이다. 김 대표는 “혈당 측정을 언제 하셨나요? 식사 전과 식사 후 혈당이 달라요. 두 경우 다 테스트를 해 봐야 해요”라고 조언해 줬다. 병원에서 종합검사실 실장으로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얘기해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 대표가 퇴직하면서 의료기 사업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이유는 병원 근무를 하면서 습득한 지식이 의료기 판매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소변, 피, 간기능 등 검사를 직접 한 다음 검사 결과를 기록해 담당 의사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었다.
김 대표는 “혈당기만 하더라도 사용방법이 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생소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혈압기, 혈당기로 직접 검사를 해본 경험이 이 분야 창업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고령화 사회, 의료기 시장 커질 것”
김 대표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고령 환자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며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가 있는 집에는 1∼3개의 생활의료기기가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집에 있는 생활의료기기의 수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밝다고 생각한 것.
그는 2004년 병원 생활을 마감하고 창업을 결심한 뒤, 건강의료기 분야 프랜차이즈 업체인 ‘이원건강 의료기’ 가맹점을 열기로 했다. 초기 물품비 2500만 원, 가맹비·교육비 1500만 원 등 총 5000만 원으로 부산진구 의료기 상가 밀집지역에 33m²(10평)짜리 작은 점포를 낼 수 있었다. 주로 다루는 제품은 일반 의료기기를 포함해 장애인 보장구, 노인복지용구(실버용품), 건강보조식품 등이다.
아무리 의료기기에 익숙한 김 대표라고 해도 초기에는 다뤄야 하는 제품 수가 너무 많아 쩔쩔 맸다. 의료기기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취급하지 않았던 의료용품을 고객에게 소개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장에 비치해 놓고도 이름을 몰라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창업을 하려면 해당 분야에 6개월 이상은 근무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이유를 그때 알았다”며 “다행히 저는 어려운 의학용어가 낯설지 않아 남들보다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품 사용법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후엔 경험을 살려 고객 상담도 시작했다. 단순히 의료기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건강 유지 요령 등 조언도 해줬다. 이후 단골손님이 늘면서 창업 6년차인 지금은 점포를 82m²(25평)로 확대했고, 한 달 평균 매출도 1200만 원으로 올라갔다.
○ “종합 실버업체로 육성” 꿈 생겨
김 대표는 좀 더 큰 꿈이 생겼다. 의료기기 판매뿐 아니라 헬스, 재활 등을 병행하는 운동처방센터와 지팡이 컬렉션, 기능성 옷·신발 등 실버용품을 판매하는 멀티숍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리 공부도 해뒀다. 2007년에는 동의대 평생교육원에서 고학력 시니어 건강운동 전문강사 과정을 수료했고, 2008년에는 보청기 판매가 가능한 ‘청능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김 대표는 “고령화 시대에 운동처방사가 유망직종으로 부상할 것 같아 이 분야 공부를 더 했다”며 “가게를 방문한 어르신들에게 나이, 주요 질환에 따라 적절한 운동요법을 권해주면 우리 가게로 다시 올 확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당뇨, 혈압, 요도, 관절, 난청 등 2, 3가지 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기 때문에 실버용품이나 의료기를 한곳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해부터 복지용구로 사업을 확대했기 때문에 복지관, 요양센터 등과 연계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니어 창업은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김이도 씨 성공 비결은
경력 100% 살린 창업… 고객 신뢰감 높여
김이도 대표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기기 분야에서 자신의 경력을 충분히 활용했다는 점이다. 건강·의료기기 분야는 의학·보건 지식을 필요로 하고 수백 종에 달하는 국내외 기기의 특징과 성능, 사용법 등을 알아야 하는 분야다.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 그러나 김 대표는 혈압기, 혈당기 등 늘 사용해 왔던 의료기기는 물론 처음 보는 제품들도 비교적 쉽게 사용·관리 방법 등을 습득해 고객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고객의 신뢰를 높여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조기에 사업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신흥 유망업종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의료기기 분야는 21세기 대표적인 유망사업 중 하나로 꼽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유통구조가 후진적이고 제품 표준화가 미흡해 소비자의 신뢰가 낮은 상태다.
특히 요즘 소비자들은 일반 의료기기와 함께 장애인 보장구, 노인복지용구, 건강기능식품 등의 판매와 전문적인 상담을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실버전문 토털숍을 필요로 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인구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실버전문 토털숍이 다수 운영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는 의료기기 판매 외에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적인 상담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실버전문 토털숍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선구자로서 입지를 다져갈 수 있다.
세 번째 성공 비결은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에 매진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평생 공부해도 모자란다고 말할 만큼 수백 가지 의료용품의 종류, 기능, 제품에 대해 공부했고 대학 강좌 등을 수강했다. 이는 고객에게 전문가로서의 신뢰감을 심어주는 데 큰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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