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한은 독립 논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03시 00분


김중수 내정자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 아니다” 발언에
“중앙은행 독립성 위축 우려” “원론적 의미” 엇갈린 평가

16일 저녁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인근 맥줏집에 한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보수적이고 ‘모범생’ 성향이 강한 한은 직원들 사이에선 평일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이날은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많은 직원이 통음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을 술자리의 토론장으로 불러낸 것은 김중수 한은 총재 내정자의 발언이다. 김 내정자가 이날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은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한은의 일부 젊은 직원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사국의 한 과장은 “한은 독립의 핵심은 정권, 즉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이라며 “김 내정자 발언은 중앙은행 독립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시장국의 한 과장은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김 내정자를 적극적으로 밀었다는데 그 이유가 바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새 총재가 물가안정이라는 사명보다 대통령 뜻만 좇아 정책을 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의 최종결정권자가 대통령”이라는 김 내정자의 발언은 중앙은행의 법적 지위와 임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행법 제4조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와 대통령의 요구가 물가안정 범위를 벗어날 경우 한은은 이에 거슬러서라도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게 한은 내 원칙론자들의 논리다.

그러나 김 내정자의 ‘대통령’ 발언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앙은행도 넓은 의미의 ‘정부’에 해당하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행정부와 협력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한은의 한 팀장은 “대통령은 헌법상 행정부뿐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며 “김 내정자의 발언은 한은이 국가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인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금융시장에서는 김 내정자의 발언과 평소 성향에 비춰 금리인상 시점이 더욱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늘었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김 내정자가 정부 의도와 다르게 통화정책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와 투자가 빨리 회복되지 않으면 금리인상 시점이 4분기로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한은법에 따라 통화정책의 최종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라며 “그렇더라도 정부, 대통령과 별개로 한은 마음대로만 통화정책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 내정자의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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