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번 손바뀜 ‘스팩發 투기경보’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미래에셋스팩1호, 4번 연속 상한가 뒤 급락… ‘투자주의’ 종목 지정

합병 실패땐 손실 불가피
전문가들 “거품주의” 경고


주식시장에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발(發)’ 투기경보가 울리고 있다.

12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미래에셋 스팩인 ‘미래에셋스팩1호’의 주가가 기막히다. 상장 이후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다가 18일 급락하는 등 널뛰기를 하고 있다. 상장 후 적어도 1년은 지나야 인수합병(M&A)이 가시화되는 장기투자 대상인데도 단기에 급등락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

전문가들은 “M&A를 활성화해 자본시장을 선진화하자는 스팩의 본래 취지가 사라지고 투기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한국 투자문화의 투기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 묻지마 투자?

공모가 1500원으로 상장해 거래 첫날인 12일 시초가가 1540원에 형성된 미래에셋스팩은 연일 급등세를 보여 18일 오전 한때 3050원까지 올랐다. 며칠 만에 공모가의 두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결국 18일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기관투자가의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18일 6.69% 하락한 251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하루에만 2575만4120주가 거래됐다. 전체 발행주식 1393만3000주 가운데 보호예수 물량을 제외하고 실제 유통 가능한 주식은 830만 주. 하루에만 주식의 주인이 평균 세 번 바뀐 셈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런 이상현상에 우려를 나타낸다. 회사 자산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시가총액에 거품이 끼고 있기 때문. 주가 거품은 스팩의 유일한 목적인 합병을 성사시키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주가 급등은 아무 실체가 없는 것”이라며 “스팩 주가가 오르면 합병 때 대상 기업이 그만큼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합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스팩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기가 오를수록 합병 성사 가능성은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 “보호 장치 마련해야”

주가가 단기에 오르면서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못하는 보호예수 의무가 없는 기관이 주식을 매도하고 나선 것도 우려할 사항이다. 스팩을 추진하는 한 전문가는 “기관이 대거 빠져 버리면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가 열릴 때 발기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다”며 “개인투자자들이 합병 실패에 따른 손해를 줄이기 위해 대상 기업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무리하게 합병에 찬성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추격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이 합병 실패 때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문제. 김갑래 연구위원은 “스팩에 투자할 때 모두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며 “합병에 실패하면 시가가 아닌 공모가를 기준으로 자금을 돌려받으므로 주가가 오른 뒤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 있으며 최근 매입한 투자자는 80% 이상 프리미엄을 주고 산 셈”이라고 지적했다.

스팩이 투기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커지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장기투자 성격이 강한 스팩이 초기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기관에 대한 보호예수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스팩의 과열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스팩에만 보호예수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만큼 다각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회사(페이퍼컴퍼니). 지분을 투자자에게 팔아 자본금을 마련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해 3년 내에 우량기업과 합병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모펀드(PEF)와 달리 일반투자자들도 소액으로 인수합병(M&A)에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