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로마네 콩티’를 두고 ‘라 로마네 콩티’라고 말하는 와인 애호가는 없다. ‘몽라셰’도 마찬가지다. 원래 ‘르 몽라셰’가 정확한 이름이긴 하다. 프랑스의 포도 원산지나 포도밭 이름 가운데는 아직도 여성형 관사인 ‘라(la)’, 남성형 ‘르(le)’, 복수형 ‘레(les)’가 남아있는 것이 제법 있다. 이 관사 덕분에 아래 소개할 여섯 개의 명품 와인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라 랑돈’ ‘라 물랭’ ‘라 튀르크’와 ‘르 파비용’ ‘르 메알’ ‘레르미트’로 이른바 ‘라라라’ 시리즈와 ‘르르르’ 시리즈로 불린다.
론 지방, 특히 코트로티, 에르미타주가 있는 북부 론은 대표적 레드 와인 품종인 시라의 고향이다. 그리고 론에는 기갈과 샤푸티에라는 두 명가가 와인의 양대 산맥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라라라, 르르르 시리즈가 와인 애호가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론 와인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시라를 비롯해 코트로티와 에르미타주, 기갈과 샤푸티에를 비교하는 재미있는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라라라 시리즈는 코트로티의 시라이고, 르르르 시리즈는 에르미타주의 시라다. 또 라라라는 기갈의 시라이고 르르르는 샤푸티에의 시라이기도 하다.
명성만 놓고 보자면 라라라 시리즈가 확실히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리즈의 맏이인 라 물랭이 세상의 빛을 본 지 벌써 40년이나 지났다. 1970년대 후반에 라 랑돈이 탄생했고, 라 튀르크의 첫 빈티지는 1985년이다. 반면에 르르르 시리즈는 가장 처음 나온 르 파비용의 첫 빈티지가 라 튀르크보다 4년이나 늦다. 나머지 두 와인은 1990년대 중반에서야 출시되었다.
언뜻 르르르 시리즈라는 이름이 라라라 시리즈의 성공을 본떠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르 파비용, 르 메알, 레르미트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에르미타주의 명성 있는 포도밭이다. 샤푸티에는 에르미타주의 포도밭 다섯 군데에서 수확한 포도로 다섯 가지 와인을 만들면서 와인 이름을 포도밭 이름에서 따왔다. 르르르 시리즈는 이 다섯 개의 와인 중 ‘르’로 시작하는 와인 세 가지가 기존의 라라라 시리즈를 연상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두 시리즈의 와인들은 같은 시리즈 내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다. 각 시리즈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짝꿍 와인을 꼽아 보자면 응축감에서는 르 파비용과 라 랑돈, 우아함에서는 레르미트와 라 물랭이 두드러진다. 르 메알과 라 튀르크는 양쪽의 성격을 적절히 나눠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싼 가격 탓에 ‘으으으’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긴 여운이 일품인 이 여섯 가지 와인을 맛보는 순간 아마도 ‘아아아’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라 랑돈 ‘라라라’ 시리즈 가운데 유일하게 100% 시라로 만든 와인이다. 라 물랭과 라 튀르크는 시라에 비오니에가 각각 11%와 7%씩 블렌드된다. 연간 생산량은 1만 병으로 라라라 시리즈 중 가장 많다. 라 물랭은 5000병, 라 튀르크는 4000병가량 생산된다. 참고로 라라라 시리즈의 2005년 빈티지는 모두 와인평론가인 로버트 파커에게 100점 만점의 평가를 받았다. 1985, 1988, 1999, 2003년에 이어 5번째 만점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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