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3일 운동, 한번에 100분’
원칙 10년 지켜 몸-마음 군살 빼내
“우선순위 정하면 시간은 충분”
요즘은 대금-그림 재미에 푹빠져
1993년 한국IBM에 근무하던 이강태 하나SK카드 사장은 일본 도쿄의 아시아본부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도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허리를 다쳤고 병원에서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하루에 5분만 운동을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했다. 이 사장은 충격을 받았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였다. 대학 때 미팅에서 만난 아내와도 싫다는 사람을 8년간 쫓아다닌 끝에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안 만나주면 6개월이고 1년이고 줄곧 기다렸다. 그 끈기에 여인은 끝내 승복했다. 일도 그랬다. 한없이 업무에만 몰입했다. 10년 이상 운동은 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환자가 되어 보니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몸을 보니 한심했어요. 몸무게는 81kg까지 불어 있었고 똥배가 심각하게 나온 허약한 중년 남성이 보였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했다. 1순위는 건강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다 건강을 잃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만사를 제쳐놓고 운동할 시간을 만들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영과 자전거로 살을 뺐다. 6개월 만에 몸무게가 15kg이나 줄었다.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이번에는 ‘목 디스크’였다. 의사는 “먹지 않고 운동해 살만 뺐지 근육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척추의 각도가 틀어지면서 목 신경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유산소 운동뿐 아니라 근육 운동도 시작했다. 덕분에 목 디스크도 회복됐다.
그리고 다시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바쁜 직장 생활이 이어졌다.
“2000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평소 건강은 자신하셨는데 갑자기 병이 온 거지요. 아버지가 힘들어하시고 점점 품위를 잃어가는 모습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사장은 다시 지난날을 돌아보고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1-3-100’이라는 원칙을 정했다. 1주일에 3일 이상 한 번에 100분씩 운동하는 것이다. 45분 걷기, 45분 근력운동, 10분 목욕으로 시간도 배분했다. 이 사장은 “그때부터 10년 동안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북한산에 갔어요. 등산을 즐기던 친구들은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한 친구는 바위 덩어리를 주머니에 넣고 뛰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저 혼자 낙오돼 허덕거리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이후 그는 주말이면 산에 올랐다. 지금은 청계산 옛골 주차장에서 매봉까지 1시간 반짜리 코스를 45분 만에 주파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을 털어 백두대간 종주를 목표로 2박 3일 일정의 산행을 한다.
이 사장은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촌놈이어서 피아노 한번 못 쳐보고 자랐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우고 싶었다. 이 꿈을 잊지 못하던 이 사장은 3년 전 마침내 이를 실행에 옮겼다. 악기의 조건은 △아파트에서 연습할 수 있어야 하고(색소폰과 드럼 등 탈락) △휴대가 간편해야 하며(첼로처럼 큰 악기 탈락) △흔하지 않아 차별화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금’은 이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악기였다. 무작정 인터넷을 뒤져 대금 교습소를 찾아간 그는 지금까지 3년째 대금 수업을 받고 있다.
이 사장은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좌선 5분, 요가를 15분 한다. 원불교 신자인 그는 ‘마음청소’를 하듯 단전호흡을 하며 좌선을 한다. 복식호흡이 필요한 대금 연주와도 찰떡궁합이다.
“몸의 군살처럼 마음의 군살도 빼는 거죠. 산에 올라가면 몸과 마음의 노폐물을 다 빼버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좌선도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이 사장의 생활에 배어 있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단순화하라’는 원칙은 그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카드사 사장으로 임명된 뒤 업무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회사 전체 업무의 60∼70%가 의미가 없거나 질이 떨어지는 일이었어요. 조직을 개편하고 평가시스템을 개선하면 현재의 30∼40% 인력으로도 충분히 지금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겠더라고요.”
금융회사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하나카드에도 관성에 젖은 관료주의 등 ‘대기업 병(病)’이 만연해 있었다.
“예를 들어 영업점에서 제휴카드를 만든다고 하면 영업점에서 제안서를 작성해 상품팀, 디자인팀으로 보내고, 영업추진팀에서 손익계산을 하고, 다시 상품팀과 제휴팀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모두 ‘이 카드를 발행해선 안 된다’는 관점에서 검토하는 겁니다. 게다가 사원과 팀장, 임원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보면 끝이 없어요. 그러니 일은 잔뜩 쌓여가는 거죠. 카드를 발행해 파는 회사가 안 되는 이유만 찾으면서 그 많은 인력과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 거예요. 이 문제를 직원들과 협의했더니 “업무량이 너무 많다. 사람을 늘려 달라”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사장은 회사 조직을 “‘아메바형’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전문분야를 갖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이합집산시켜 업무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최근 스케치북과 캔버스를 사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하나SK카드에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이강태 사장은 ―1953년 전북 전주 출생 ―1975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79년 LG유통 기획실 ―1981년 고려대 개발경제학 석사 ―1994년 IBM 유통영업부 실장 ―1996년 LG유통 정보서비스부문 이사, 상무 ―2001년 삼성테스코 상무, 부사장 ―2002년 명지대 경영학 박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