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北 화폐개혁 왜 실패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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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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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플레이션 억제-계획경제 강화 위해 단행
교환 50만원까지… 투기 이어져 경제 큰 혼란

북한이 지난해 11월 화폐개혁에 따라 새로 발행한 화폐.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하고 생필품이 품귀현상을 빚는 등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이 지난해 11월 화폐개혁에 따라 새로 발행한 화폐.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하고 생필품이 품귀현상을 빚는 등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1월 30일 북한은 구 화폐의 사용을 12월 7일부터 금지하는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실시했습니다. 신구 화폐의 교환비율을 100 대 1, 가구당 교환한도는 구 화폐 기준 10만 원으로 정했으나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이후 한도를 5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합니다.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은 1992년 이후 17년 만으로 인플레이션 억제, 불법자금 색출, 지하경제 자금의 양성화 및 계획경제체제 강화 등이 목적이었습니다.

화폐개혁은 구 화폐의 유통을 정지시키고 신 화폐를 강제로 유통시키기 위해 구 화폐와 신 화폐를 단기간에 교환하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화폐개혁은 주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형태로 이뤄지는데요. 이는 한 국가에서 사용되는 화폐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0분의 1 리디노미네이션이라고 하면 화폐 액면이 1000분의 1로 줄어들어 구 화폐 1000원이 신 화폐 1원으로 바뀌는 겁니다. 물론 화폐로 표시되는 모든 재화 및 서비스의 가격도 함께 1000분의 1로 줄어듭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일반적으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화폐로 표시하는 금액이 점차 커져 발생하는 계산 및 지급, 장부 기재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실시합니다. 또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의 하락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짐바브웨 정부는 2006년 8월 이후 2009년 2월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1000 대 1, 100억 대 1, 1조 대 1의 비율로 짐바브웨달러에 대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일부 선진국에서처럼 통화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리디노미네이션도 있습니다. 1960년 1월 프랑스는 100 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해 이전까지 1달러에 490프랑 수준이던 달러 대 프랑의 비율을 한 자릿수로 조정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차례 화폐개혁의 역사가 있습니다.

6·25전쟁 중에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남한에서 통용되던 조선은행권(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을 불법으로 발행해 유통시켰습니다. 이에 대항해 한국 정부는 1950년 9월부터 1953년 1월까지 전선(戰線)의 변화에 따라 지역별로 나눠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과 1 대 1로 교환하고 구 화폐의 유통을 정지시켰습니다.

1953년 2월에는 전쟁의 여파로 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짐에 따라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화폐 단위를 원(圓)에서 환으로 바꾸는(100원=1환)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했습니다.

1962년 6월 10일 박정희 정부는 산업자금 조달과 인플레이션 제거를 목적으로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환’ 표시 화폐를 ‘원’으로 바꾸고(10환=1원) 구 화폐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액면단위를 일률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처럼 1인당 교환한도를 정할 경우 재산권 침해나 실물투기가 발생하는 등 경제에 큰 혼란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새로운 화폐단위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면서 물가가 오르기도 합니다. 예컨대 1000분의 1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우 이전에 950원 하던 물건가격이 화폐개혁의 혼란을 틈타 슬그머니 0.95원이 아닌 1원으로 오르기 쉽습니다.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상당수 유럽 국가의 물가가 크게 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권 발행에 따른 현금인출기 및 자판기 교체나 전산망 정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발생하지요.

한국경제도 ‘원’ 단위 통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 때문에 계산의 편의와 원화의 대외 위상을 높이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하고, 식료품이 품귀현상을 빚고, 아사자 및 집을 잃고 방랑하는 노숙인(꽃제비)이 전국적으로 급증하는 등 그러잖아도 어렵던 경제가 파탄 지경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그만큼 화폐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이번 북한 화폐개혁의 실패가 주는 교훈도 많아 보입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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