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칸막이식 법에 막혀 출시 지연-포기 속출
“차세대 산업 위해 필요”… 임시인증제 등 도입 추진
LG전자는 2004년 혈당측정과 투약관리가 가능한 휴대전화 ‘당뇨폰’을 개발했다. 하지만 당뇨폰이 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돼 휴대전화 매장에서 팔지 못하는 등 제약이 많아서 더는 신제품을 내지 않고 있다. 지게차와 트럭을 결합해 트럭 지게차를 개발한 A중공업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제품 승인이 4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60억 원의 손실을 봤다.
또 발광다이오드(LED) 광고판은 현행 옥외광고물법상 디지털 광고매체에 대한 규정이 없어 불법으로 간주된다. 선박과 항공기를 결합한 ‘위그선’은 계류시설과 관제 시스템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시장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 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하거나 통제할 법이 없어 시판이 지연되거나 상품화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업종별로 나뉘어 융합 제품에 대해 대처하기 힘든 기존 법제도의 맹점을 개선하기 위해 ‘산업융합촉진법’을 9월경 제정하기로 했다.
○ ‘법 때문에 기술발전 지체해서는 안 돼’
지식경제부는 업종별 산업발전의 틀을 바꿔 기술 융합을 촉진하고 인증·관리 과정에서 개별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는 스마트폰, 지능형 자동차 등 차세대 신성장산업을 이끄는 제품들이 단일 기술이 아닌 여러 분야의 기술을 융합·응용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산업발전법 체제를 토대로 한 기존의 ‘칸막이 식’ 법으로는 이런 추세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산업융합발전위원회를 구성해 범정부적인 추진 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산업계가 융합제품을 개발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을 접수해 불합리한 규제를 신속히 해결하는 ‘산업융합촉진기획단’도 구성할 계획이다.
또 개별 법의 한계로 인증·감독 기관의 분류가 불분명해 상용화가 늦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융합 제품에 대해서는 기준 규격을 제정할 때까지 임시 인증하는 ‘융합 신제품 인증제’도 마련하기로 했다. 융합 신기술에 대해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명시해 관련 법령과 제도가 없어 신기술 연구가 좌초되는 일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이날 산업융합촉진법 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법 때문에 기술발전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며 “업종별 법제정 수요를 흡수할 수 있고, 매번 별도의 입법 과정 없이도 신산업 창출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 ‘관련 법령 없어 출시 늦어져’
기업들도 기존의 칸막이식 법 때문에 기술융합 제품 출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1346개 회사들을 대상으로 ‘융합산업 실태와 애로요인’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1%가 “융합제품 사업화 과정에서 관련 법령이나 기준이 없어 시장 출시가 늦어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 4곳 중 1곳은 제품개발을 이미 끝내 놓고도 적용기준이 없어 해당 제품 인허가가 거절되거나 지연됐다고 응답했다. 이로 인한 손실액은 ‘1억 원 미만’이란 응답이 30.4%로 가장 많았고, ‘10억 원 이상’이란 응답도 8.9%였다.
대한상의 박종남 조사2본부장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융합제품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관련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외국업체에 관련 시장을 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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