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 시에 있는 대한솔루션 현지공장에서 직원들이 기아자동차에 납품할 헤드라이너 모듈을 만들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들이 GM 등 현지 업체에도 부품 공급을 시작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웨스트포인트=황진영 기자
지난달 26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조지아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서 오펠라이카 시로 향하는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자 만도, 한화 등 낯익은 이름의 간판을 단 공장들이 눈에 띄었다. 기아자동차 조지아 공장에서 28km,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128km 떨어져 있는 오펠라이카 시에는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10여 개 한국 회사의 현지 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만도 아메리카법인 현지 공장은 2005년 현대차가 앨라배마 공장을 건설할 때 함께 설립됐다. 현대·기아차 외에도 미국 ‘빅3’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에 브레이크 서스펜션 등의 주요 부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 현대·기아차를 발판으로 큰 도약
현대·기아차와 함께 미국에 진출한 한국 부품회사들은 만도아메리카처럼 활동 반경을 미국 현지 자동차 회사로 넓히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업체 중 27개사가 미국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그중 10여 개 회사가 미국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빅 3’ 등 미국 현지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헤드라이너(차량 천장에 장착하는 부품) 모듈 등을 공급하는 대한솔루션은 2004년 앨라배마 주에 현지 공장을 준공했다.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에는 현대차에만 납품할 계획이었는데 현지 공장 건설을 계기로 미국 자동차 회사에도 눈을 돌려 2007년부터 GM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권회현 대한솔루션 회장은 “수요가 있을 때 즉시 공급해야 하는 헤드라이너 모듈은 완성차 공장 인근에 있어야 한다”며 “생산 시설이 한국에만 있을 때는 해외 자동차 회사로의 수출을 깊이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미국 회사에 수출하던 회사들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한 이후 공급 물량이 대폭 늘었다. 만도아메리카의 경우 현지 생산 물량 중 30%만 현대·기아차에 가고 나머지 70%는 현지의 다른 회사에 납품한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거래처가 확대되면서 품질관리 기법도 크게 향상됐다. 곽태영 만도아메리카 법인장은 “오랜 기간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현대기아차는 품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만 미국 회사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부품 회사를 바꾼다”며 “그런 회사들을 상대하면서 품질관리 기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 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 정몽구회장 “현대차만 바라보지 말라”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 시 기아차 공장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한솔루션 조지아 공장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야트막한 야산을 발파해 평평하게 만든 터에 공장을 지었다고 한다. 대한솔루션은 기아차 조지아 공장이 들어서자 추가로 공장을 만들었다. 권회현 회장은 “조지아 주 정부가 공장 용지 조성 및 토목공사를 도맡아 하고, 우리는 건물 건설비용만 댔다”며 “기아차가 조지아 주정부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을 때 협력회사들도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덕분에 큰 부담 없이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 진출한 부품 회사들이 미국 자동차 회사에 납품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체적인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기아차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2005년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동반 진출한 협력회사 사장들에게 “이왕 미국에 왔으니 현대차만 바라보지 말고 미국 현지 자동차 회사에도 물건을 납품할 수 있도록 해보라”고 권유했다.
자동차 부품 회사들은 부품 공급처를 다양화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기 때문에 이날 정 회장의 발언은 ‘큰 선물’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협력회사 사장은 “현대차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정 회장이 미국 회사에 납품해도 좋다고 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현지 회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현대차는 협력회사들이 미국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금형 제작비용도 지원했다. 금형 제작비용은 부품에 따라 수십억 원에서 많으면 100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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