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가 주최하는 ‘디지털 미디어 콘퍼런스 2010’이 30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3회를 맞은 이 행사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다 올해 규모를 키워 서울에서 개최됐다. 왼쪽부터 로버트 길비 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 이동현 CJ엔터테인먼트 전략 기획팀장, 숀 시오우 미디어코프 부사장, 존 코스너 ESPN 수석부사장, 켈리 서머스 디즈니 디지털배급 부사장.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코리아
2006년 월트디즈니 계열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ESPN폰’이라는 휴대전화를 선보였다. 휴대전화로 경기 중계와 결과를 볼 수 있는 전화기였다. 이 회사는 ESPN폰의 성공을 위해 1500만 달러(약 169억 원)를 쏟아 부었는데 판매목표인 50만 대는커녕 단 3만 대만 팔고 끝났다. 같은 해 디즈니 이사회에 합류했던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씨는 ESPN폰의 실패를 보고 “한 번도 기계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회사가 전화기를 만드는 실수를 했다”며 ESPN 경영진을 나무랐다. 콘텐츠 제작, 유통, 캐릭터 사업까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왔던 디즈니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파트너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디지털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ESPN의 수석부사장 존 코스너 씨는 30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미디어 콘퍼런스 2010’에서 이 실패 경험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실패를 교훈삼아 직접 휴대전화를 만드는 대신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과 스프린트 등 전자업체나 통신사와 제휴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ESPN만이 아니라 디즈니 전체가 그렇게 변했다.
그 결과 ESPN은 통신사와의 협력모델인 경기 결과 문자메시지(SMS) 전송서비스를 통해 10억 건이 넘는 SMS를 보냈다. 그만큼의 ‘ESPN 팬’이 생긴 셈이다. 유튜브와 훌루를 비롯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디즈니 콘텐츠가 34억 회 재생됐다. 애플 아이튠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에서 판매된 콘텐츠도 7500만 건에 이른다.
디즈니는 정확한 디지털 매출 규모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날 밝힌 디즈니의 인기드라마 ‘로스트’ 매출 가운데 20% 이상이 주문형비디오(VOD)와 휴대전화를 통한 시청이었다.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디즈니의 TV방송국 ABC의 인터넷사이트 ‘abc.com’도 이달 19일 CBS와 NBC를 제치고 인터넷방송 1위에 올랐다. 1923년 만화영화를 만들며 세워진 87세의 미디어기업이 최근 3년 동안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급속히 탈바꿈했다. 디즈니의 앨버트 쳉 디지털총괄 부사장은 “우리가 드디어 디지털 경제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 미래는 모바일에
거저 얻은 결과는 아니었다. 디즈니는 올해 3회째인 이 콘퍼런스를 1, 2회는 싱가포르에서, 3회는 규모를 키워 서울에서 열었다. 미국에선 산업계 콘퍼런스를 통해 정보를 모을 수 있지만 아시아에선 기회가 없어 아예 콘퍼런스를 만들었다는 게 디즈니의 설명이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디즈니 본사 임직원이 대거 참여했으며 비공개로 초청한 한국 기업 가운데에는 CJ엔터테인먼트, EBS 등 방송 관련 업체 외에도 SK텔레콤과 KT, LG텔레콤 등 통신업계 관계자도 다수 눈에 띄었다. SK텔레콤의 설원희 뉴비즈부문장은 이날 ‘연결된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기’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휴대전화를 통한 영상 콘텐츠 전송은 통신망에 부담을 주는데 한국처럼 이동통신망이 잘 깔린 나라라면 새 서비스가 시작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로버트 길비 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은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초고속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보급률 등에서 가장 앞선 나라”라며 “디즈니는 기술적으로 앞선 한국 기업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서비스 영감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