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리포트]6년만에 시공능력 1위 탈환한 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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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일 03시 00분


경부고속도-소양강댐에서 청계천-UAE원전까지
현대는 ‘건설 코리아’의 산 역사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다목적댐, 청계천 복원, 아셈타워,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원자력발전소….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2009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1위에 오르고 매출 9조 원의 실적을 올린 현대건설이 완공했거나 앞으로 진행할 공사들이다.

1960년대 국내 아파트의 시조로 꼽히는 마포아파트 건설, 국내 최초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국내 최초 해외진출, 국내 최초 600억 달러 수주 달성…. 현대건설의 기록은 한국 건설회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현대건설은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43년간 시공능력평가 1위를 차지했다가 외환위기 이후 2, 3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지난해 6년 만에 다시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 기초가 탄탄하다

현대건설의 저력은 무엇보다 기초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이는 오래된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더욱 견고해졌다. 김석준 쌍용건설 대표이사 회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현대건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건설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을 맏형이라고 부른다. 군대가 아무리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전쟁이나 공중전을 잘해도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에 깃발을 꽂는 보병이 최고다. 그런 면에서 현대건설이 뛰어나다.” 상황이 급할 때는 아웃소싱을 주지 않고 직접 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축적된 노하우-불굴의 도전정신 “세계최고”

이원일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압도적인 수주실적을 올린 해외부문은 고성장을 지속했고 주택사업 비중이 15%가량에 불과해 금융위기에도 타격이 거의 없었다”며 “석유 및 가스는 물론이고 전기, 토목, 건축, 원자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해외 건설시장에서 최상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모태는 1947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설립한 현대토건이다. 6·25전쟁 이후 복구사업의 일환이었던 한강 인도교를 시작으로 서울∼수원, 서울∼의정부 국도를 국내 최초로 아스팔트로 시공하며 토목공사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다. 소양강 다목적댐은 당초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설계됐으나 시멘트와 철근이 크게 부족해 공사현장 주변의 모래와 자갈을 이용한 ‘사력(沙礫)댐’으로 건설했다. 1967년 당시 사력댐은 높이 30m 이내에서만 경제성이 있다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현대건설은 123m에 이르는 소양강댐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교량에서도 현대건설의 발자취는 뚜렷했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국내 기술로 건설한 최초의 교량인 양화대교를 비롯해 거제교 강화교 잠실대교 마포대교 등을 지었다. 또 국내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공사를 시작으로 이후 세운상가아파트,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등 아파트를 지속적으로 지었다. 최근에도 청계천 복원공사, 성수대교 복구공사를 비롯해 국내 최대 컨벤션센터인 아셈타워 등 수많은 공사를 수행했으며 길이 33km로 세계 최장 방조제인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마무리했다.

2006년부터 자율경영체제로 위기 극복

하지만 이런 현대건설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는 국내 건설업계에도 큰 타격을 가했다. 그 여파로 1998년 한 해 동안 건설업계의 부도율은 7%를 넘었다. 국내 수주는 1997년 대비 40%나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해외 수주도 전년 대비 71%로 줄어들었다. 동아건설, 우성건설 등 대형 건설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됐다.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현대건설 역시 차입금 규모가 5조4000억 원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여기에 현대그룹의 내분까지 겹쳐 유동성 위기는 더 심각한 국면을 맞았다. 결국 대규모 명예퇴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이후 채권단의 관리를 받던 현대건설은 2006년 5월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동호 현대건설 상무는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회사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헤쳐나갔다”며 “정주영 명예회장이 주창한 창조정신, 도전정신이 위기 극복의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지면 디자인 서장원 기자
지면 디자인 서장원 기자

국내원전 20기 중 12기 건설… 시공기술 100% 국산화

○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21세기 ‘원전 수출’의 선두


1970년대 당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관사인 현대건설은 이제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원전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1971년 한국의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 건설 이래 현대건설은 국내에서 운영 중인 20기의 원전 중 12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현재 추가로 짓고 있는 6기 중 4기를 시공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하게 가압경수로(PWR)와 가압중수로(PHWR)를 모두 건설한 경험이 있다는 게 현대건설의 최대 강점이다. 고리 1호기는 설계, 기기 제작 및 사업관리를 전적으로 외국 기술에 의존했고 시공도 외국 기업의 기술 지원하에 이뤄졌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고리 1∼4호기, 영광 1∼2호기, 월성 1호기를 건설하면서 외국의 선진 원자력 시공기술을 습득했다. 이에 따라 1995년에 완공한 영광 3, 4호기는 국내 최초로 시공 기술 100%의 완전 자립을 이뤘다. 현재 시공 중인 신고리 3, 4호기는 140만 kW급 한국형 원전(APR-1400)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과 경험은 최근 UAE 원전 수출의 기반이 됐다. 현대건설은 원자력사업을 전담할 원자력사업본부 신설을 검토하는 등 향후 미래를 이끌어 갈 신성장동력으로 원자력 부문을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이창근 현대증권 산업분석부장은 “현대건설은 채권단의 관리를 받으면서 재무구조가 투명해졌고 원자력 부문에서 유일하게 핵심 공사를 시공한 경험이 있다”며 “앞으로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이나 브라질 등 중남미 고속전철 수주전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 국내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단순시공 접고 감성건설로 글로벌 톱20 진입” ▼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부동산 경기 침체로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고 중견 건설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몰려 있지만 현대건설의 실적은 견고하다. 주택사업 비중이 15∼20% 수준으로 낮은 데다 원전, 플랜트 등 해외사업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김중겸 사장(사진)은 지난달 18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김 사장 취임 이후 현대건설의 경영 성적표는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인다. 2009년 매출은 9조2786억 원으로 전년보다 27.6%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4558억 원으로 22% 늘어 창사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11회에 걸쳐 중동, 동남아, 유럽 등 27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잦은 해외출장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과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화를 위한 노력 중 하나”라며 “‘글로벌 톱20’ 진입을 위해 해외 사업을 지원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 사장은 인문학에도 관심이 높다. 인문학과 철학을 중시하는 ‘감성경영’을 도입해 회사 문화를 바꾸고 있다.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역사 철학 종교 심리학 등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대건설은 올해 신입사원 168명 가운데 15명을 철학 심리학 조각 전공자들로 선발했다.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서울대 인문학 과정 등 인문학 중심으로 바꿨다.

김 사장은 ‘감성 디자인’ 상품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해외사업 조직 및 역량 강화 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시장 다변화와 신시장 개척을 위해 알제리와 카자흐스탄에 신규 지사를 열었고 자카르타, 뉴델리, 홍콩에 영업지사장을 파견했다.

그는 현대건설이 앞으로 ‘글로벌 디벨로퍼(developer)’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해외에서 시공권만 따오는 수주는 앞으로 중국이나 인도에 모두 뺏길 수도 있다. 이제 건설사들은 공사가 아니라 사업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사업을 기획해 해당 국가에 제안하고 디자인과 설계, 구매, 시공(EPC)을 모두 맡고 금융까지 조달할 수 있는 글로벌 디벨로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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