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맺은 정보공유에 대한 양해각서(MOU)에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두 기관 사이의 정보공유가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을 규정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뤄지는 정보공유 수준 역시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MOU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 정보공개 MOU가 금융실명법 위반(?)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한은과 기획재정부에 정보공유 MOU가 금융실명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설명서를 보낼 계획이다. 금감원은 재정부의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문제를 삼는 것은 정보공유 MOU를 통해 한은이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권 금융회사 고객들의 구체적인 거래정보까지 열람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금융실명법은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고객들의 동의 없이 구체적인 거래 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감독기관은 금융실명법에 상관없이 금융회사 고객들의 구체적인 거래 명세를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은은 감독기능이 없는 만큼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고객 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금융실명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통화정책 수립을 위해 시중은행과 외국은행의 한국지점 등에 대해서만 자료제출 요구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정보공유 MOU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한은이 금융실명법에 저촉되지 않고 정보를 제공받으려면 모든 고객으로부터 일일이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보공유 MOU가 금융거래 실명법 위반으로 결론이 날 경우 고객의 세세한 거래 정보는 한은에 제공하지 못하지만 거래명세를 집계한 정보는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법적 구속력 없는 MOU만으론 한계
지난해 9월 정보공유 MOU 체결 당시 한은과 금감원은 양 기관의 정보공유 수준을 종전의 60%에서 98%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 두 기관이 서로 요청한 자료의 공유를 ‘경영 기밀’, ‘시장 혼란’ 등의 이유로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말에는 두 기관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MOU 체결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양 기관의 정보공유 범위는 당초 목표에 못 미치는 8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회사가 한은과 금감원 중 한쪽에만 정보를 제출하는 정보를 두 기관이 공유하기 위해선 금융회사로부터 정보공유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만 일부 회사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MOU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경영정보를 제출하는 기관들의 동의서를 받지 못하면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두 기관의 정보공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두 기관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만으로는 정보공유에 한계가 있다”며 “한은과 금감원,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등 관련 기관들의 정보공유를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거나 법 개정을 통해 정보공유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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