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방글라데시의 마슌살람 마을. 이곳에서 아스마 씨(44·여)는 손꼽히는 부농이다. 그가 가진 집만 모두 8채.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2채를 제외한 6채는 임대를 하고 있다.
주민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마을 입구의 작은 식료품 가게도 그의 소유다. 지난해엔 마을 청년 6명을 고용하고 있는 알루미늄 창틀과 타일 공장까지 새로 지었다. 4마리의 젖소와 10마리의 염소가 생산하는 하루 10L의 우유까지 포함하면 그의 한 달 수입은 약 20만 다카(약 400만 원). 방글라데시에서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은행 지점장 월급이 10만 다카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수입이다.
하지만 그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삯바느질로 어렵게 가족을 부양하던 농촌 빈민이었다. 가끔 다른 이의 논밭을 돌봐주고 돈을 벌어오는 남편은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집도 땅도 없이 5명의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년 전 그라민은행을 소개받고 나서다. 그라민은행의 대출을 받으려면 5명이 그룹을 이뤄야 하는 규정 때문에 이웃에 사는 모멜라 씨가 회원 가입을 권유한 것. 10만 원의 대출을 받아 집에서 옷감을 짜는 일부터 시작한 아스마 씨는 3년 만에 집을 샀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가난을 벗어난 것은 아스마 씨 그룹의 나머지 4명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매달 5만 다카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서민에게 무담보 무보증 소액 신용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성공 열쇠는 사람 관리다. 안정적으로 이자 수입을 챙기는 게 목표인 은행과 달리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대출을 받은 이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아무리 높은 대출 회수율을 기록하더라도 대출을 받은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전까진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라민은행의 대출자는 2008년 말 현재 767만 명. 이 가운데 58%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라민은행의 대출을 받은 이들이 담보로 잡힐 땅도, 일정한 수입도 없는 농촌 빈민층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빈곤 탈출에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비결은 효과적인 대출자 관리다. 그라민은행의 대출자 관리는 은행만의 몫이 아니다. 대출을 받은 모든 사람이 참여한다. 대출자들이 서로 조언을 해주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가난의 굴레를 끊는 것을 돕는 그라민은행의 시스템은 한국의 미소금융에도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 대출자들끼리 서로 격려 자활 성공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서북쪽의 마슌살람 마을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아스마 씨(왼쪽). 최근 이 마을의 그라민센터장으로 선출된 아스마 씨는 그라민은행 대출자 50명을 관리하고 자신의 성공 비결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진 제공 그라민은행 지난달 23일 아스마 씨는 이웃 키쇼리 씨(41·여)의 집을 찾았다. 키쇼리 씨는 그라민은행의 대출을 받아 아들과 함께 인터넷센터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컴퓨터 보급률이 낮은 방글라데시에선 돈을 내고 e메일을 보내거나 공공기관에 팩스로 문서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센터가 새로운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키쇼리 씨는 이 사업을 위해 10만 다카(약 200만 원)가량을 빌렸다.
아스마 씨는 마을에선 조금 멀지만 최근 벽돌 공장들이 많이 들어선 엘렝가 지역에 센터를 세워보라고 권했다. 아스마 씨는 “20년간 매주 한 차례 이상 만나 사업 얘기, 가족 얘기를 한 사이”라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민은행은 같은 마을의 대출자 5명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다. 그룹은 대출 과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룹 내 나머지 회원의 동의가 있어야만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그룹 내에선 2명까지만 동시에 대출을 받고 이들이 대출금을 다 갚아야만 다른 2명의 회원이 대출을 받는다. 사실상 그룹 회원끼리 연대 보증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이 때문에 그라민은행 대출자들은 그룹 내 다른 회원들이 사업에 성공해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그룹은 대출자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서로의 가정 문제를 상담하고 자녀 교육, 건강 등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라민은행 직원이 나서지 않아도 그룹에 속한 대출자들이 서로의 대출을 관리하고 자활을 돕고 있는 것.
자네트 콴니네트 그라민은행 국제협력 이사는 “직원들만으론 사후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출자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사후관리는 매우 효과적”이라며 “대출자들이 다른 회원들의 신용을 평가하고 서로를 돕는 것이 그라민은행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 참여형 대출 관리로 가난굴레 탈출
미소금융의 대출자 관리는 모두 미소금융 직원의 몫이다. 미소금융은 직원들에게 매달 한 차례 이상 대출자들을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대출자들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금융 세무 법률 문제는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출 심사에도 빠듯한 미소금융의 직원 수로는 체계적인 대출자 사후관리가 어렵다. 현재 미소금융 중앙재단과 전국 35개 미소금융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192명. 이들은 매일 지점을 찾아오는 하루 100명 이상의 대출 신청자들을 상담하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신청자의 사업장이나 가정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그라민은행의 참여형 대출자 관리는 미소금융도 시도해볼 만한 방안이다. 실제 프랑스의 대표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아디(ADIE)’ 역시 대출자들을 그룹으로 묶어 관리하고 있다.
미소금융 관계자는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아직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체계적인 사후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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