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국제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14일 가장 먼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높였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당장 높일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S&P와 피치에서 각각 한국의 신용등급 평가를 담당하는 킴엥 탄 이사와 아일링 니암 이사는 20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신용등급은 1, 2년 내에 조정될 확률이 낮다”고 밝혔다. 정부는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이어 S&P와 피치도 조만간 국가신용등급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한국의 신용등급 상승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 신용평가회사는 한국 시중은행의 높은 단기외채 비중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남북관계 악화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신용등급 상승의 걸림돌이라고 여겨지던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는 위험 요인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다.
두 신용평가회사의 이 같은 인식은 1997년 말 은행권의 높은 단기외채 비중이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시 단기로 고금리의 해외 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운용해온 은행들은 외화 자금을 갚으라는 해외 은행들의 요구에 만기가 달라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것이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단기외채 비중이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S&P의 탄 이사는 “상대적으로 큰 단기외채 및 변동금리로 빌려온 자금의 비중은 은행들이 위험에 빠질 때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단기외채 비중이 40%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줄여왔고 관리도 잘되고 있는 편이라 큰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총 외채 4019억 달러 중 만기가 1년 이하인 단기외채는 1499억 달러로 약 37.3%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전의 신용등급보다 각각 2등급, 1등급 낮게 책정해놓은 S&P와 피치가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리기까지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S&P와 피치는 그동안 신용평가회사들의 주요 관심사로 여겨져 온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별다른 강조를 하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북한은 한국이 가진 문제점 중 하나일 뿐이라고만 밝혔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서도 ‘한국 경제에 제한적인 영향을 줬고,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치의 니암 이사는 “북한이 일시적인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북한의 붕괴와 이로 인한 통일에 대한 한국의 부담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 정부와의 면담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통일비용과 연관시켜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S&P와 피치에도 통일 뒤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각하고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주변 강대국이 모두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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