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뱅크의 꿈, 볼커룰에 물거품되나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4월 23일 03시 00분


시중은행장들, 금융시장 규제강화 국제적 움직임에 촉각

상업-투자은행 분리하고
M&A 후 시장점유율 제한

몸집 키우려는 국내 은행들
볼커룰 도입땐 M&A 불투명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이른바 ‘볼커룰’이 국내 은행권의 인수합병(M&A) 레이스에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했다. 특히 볼커룰이 구체적인 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M&A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대형은행을 육성한다는 한국 정부의 ‘메가뱅크(Mega Bank)’ 구상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볼커룰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면서 현재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인 폴 볼커가 제시한 아이디어로 금융회사의 부실 방지를 위한 감독강화 방안이다.

은행권 M&A 레이스에 출사표를 낸 주요 시중은행장들은 이번 주부터 다음 달 초까지 잇달아 열리는 국제금융기구 회의에서 논의될 볼커룰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점점 까다로워지는 볼커룰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달 4일 의회에 제출한 볼커룰의 핵심은 상업은행(CB)이 투자위험도가 높은 투자은행(IB) 업무를 하면서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CB와 IB를 분리하는 것이다. 또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가 M&A를 한 뒤 합병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제도 담고 있다. 이어 15일에는 미 상원의 크리스토퍼 도드 금융주택위원장이 지난해 하원에서 발의된 ‘금융안정개선법’에 볼커룰을 추가하면서 시장점유율 규제 대상을 비(非)은행으로 확대한 새로운 버전의 금융안정개선법(도드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미국이 볼커룰을 자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는 볼커룰이 도입되면 자국 금융회사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어 국제적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며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은 미국의 주장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올해 G20 의장국이면서 11월 정상회의 개최국이어서 미국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 은행 3곳-보험사 7곳 규제 대상

은행권에서는 CB에서 IB 기능을 분리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 국내 대형 은행은 대부분 IB 역량을 높이기 위해 트레이딩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식과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고 있다. 볼커룰이 적용되면 이런 투자에 제약이 따른다. 또 IB가 CB를 인수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사실상 국내 유일의 IB인 산업은행이 최근 태국의 한 상업은행을 인수하려다 포기한 것도 볼커룰 때문이다.

대부분 CB 형태를 띠고 있는 국내 은행들은 시장점유율 규제를 더욱 걱정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점유율이 10%를 웃도는 은행은 국민 우리 신한 등 3곳이나 된다. 여기에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을 인수 또는 합병할 경우 점유율이 크게 올라 볼커룰을 거스르게 된다. 또 점유율이 10%를 넘는 생명보험사 3곳(삼성 교보 대한), 화재보험사 4곳(삼성 현대해상 동부 LIG)도 볼커룰 규제에 놓인다.

M&A를 목전에 둔 국내 은행권은 볼커룰 도입이 반가울 리 없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선진국이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는 법안을 신흥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신흥국은 위험 전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에 협조하는 공조 방식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장들의 관심은 23∼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 다음 달 1∼4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 쏠려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논의 과정에서 볼커룰의 도입 윤곽이 더욱 분명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서병호 연구위원은 “볼커룰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데다 기존 금융정책 방향과도 상충될 수 있다”며 “정부와 금융계가 함께 협력해 종합적 검토를 통해 볼커룰에 대한 입장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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