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바롱 드 로칠드’는 화해와 재결합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와인이 될 것이다. 언뜻 흘려들으면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모기업인 도멘 바롱 드 로칠드를 언급하는 게 아닌지 착각하기 십상이다.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바롱 드 로칠드는 보르도의 저 유명한 로칠드가(家)의 세 집안에서 함께 만든 샴페인 이름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를 소유한 ‘바롱 필리프 드 로칠드’ ‘도멘 바롱 드 로칠드’, 그리고 보르도 리스트라크에 샤토 클라르크를 소유한 ‘바롱 에드몽 드 로칠드’, 이 세 로칠드가는 2005년 파트너십 계약을 하고 이듬해부터 이 샴페인을 빚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의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6월, 랭스의 코트데블랑 지구에 있는 특급 또는 1등급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빚은 브뤼(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드라이한 샴페인), 블랑 드 블랑(샤르도네 100%로 양조한 샴페인), 로제(분홍빛 샴페인)를 출시했다. 셋 모두 여러 해의 포도를 섞어 만든 ‘넌 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으로 샤르도네의 사용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10만 병을 생산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로칠드 가문뿐 아니라 이들 가문과 관련된 전 세계 금융회사의 각종 연회에서 쓰일 와인 양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요 와인 소비국 중심으로 물량이 일부 풀렸지만 국내에는 아직까지 수입되지 않고 있다.
바롱 드 로칠드 탄생 소식이 반갑고 흥미로운 이유는 오랫동안 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 ‘함께’ 와인을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로칠드 가문의 시조 마이어 암셸은 임종 순간까지 가족의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다고 한다. 평소 아버지의 당부대로 그의 다섯 아들은 어떠한 난관에도 똘똘 뭉쳤고 마침내 유럽 금융계 정상의 자리에 가문의 이름을 드높였다.
하지만 1845년 카뤼아드 포도밭을 두고 불거지기 시작한 로칠드가 후손들의 갈등은 해가 갈수록 깊어져 갔다.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세계 최정상급 와인을 대표하는 이름인 동시에 와인업계의 대표적인 적대적 라이벌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의 대립이 워낙 팽팽했던 터라 이들이 화해해서 바롱 드 로칠드 같은 번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샴페인을 요모조모 살펴보면 곳곳에서 이들의 화합 의지가 느껴진다. 샴페인 뚜껑을 감싼 호일에는 로칠드 가문의 발판을 만든 다섯 아들을 상징하는 화살 다섯 개가 새겨져 있다. 정면에는 ‘일치단결(Concordia)’ ‘성실(Integrita)’ ‘근면(Industria)’이라고 적힌 로칠드 가문의 문장(紋章)도 볼 수 있다. 병 뒤쪽에는 로칠드가 세 집안 대표 인물들의 서명도 보인다. 다시 뭉친 로칠드가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샤토 클라르크
이 포도원의 역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토파 수도사가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1973년 이곳을 매입한 돈 많은 금융가의 자손인 에드몽 드 로칠드 남작이 기존에 있던 포도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 양조학의 아버지 에밀 페노의 지도 아래 새로 포도나무를 심었다. 2005년산은 메를로 70%, 카베르네 소비뇽 30%로 블렌딩했다. 10∼15년 숙성이 가능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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