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자고나면 쑥… 中企 “주문받기 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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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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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새 니켈 49%↑ 주석 21%↑ 구리 19%↑
정부, 대기업에 “납품단가 올려줘라” 요청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냉각기부품 제조업체 S사는 매일 아침 조달청에서 고시하는 구리 가격 동향을 살피는 일로 업무를 시작한다. 제품의 주재료가 구리인 이 회사는 최근 급등하고 있는 구리가격이 큰 골칫거리다.

올해 S사는 경기회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주문량이 15% 정도 늘었다. 하지만 주문량이 늘어난 것도 반갑지 않다. 구리 가격이 오른 만큼 제품가격을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S사 관계자는 “2월 초에 비해 t당 구리 가격이 20% 가까이 올랐고 당분간 계속 오를 가능성이 커 조금이라도 가격이 쌀 때 구입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주문이 늘어도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 대기업 납품단가에 이례적 개입

최근 구리 니켈 주석 같은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중소기업들을 다시 한 번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2월 초 t당 6242달러였던 구리는 지난달 29일 기준 7411달러로 18.7% 올랐다. 같은 기간 주석은 t당 1만4950달러에서 1만8100달러(21.1%)로 올랐고 니켈 가격은 t당 1만7035달러에서 2만5450달러로 49.4%나 상승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례적으로 정부도 나섰다. 대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추가 비용을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아 중소기업들이 ‘이중고’에 시달린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27일부터 주요 업계별로 원자재 가격이 얼마나 올랐고, 이에 따라 납품 단가는 어떻게 조정되고 있는지 본격적인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펄프와 비철금속을 많이 사용하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원자재 가격과 납품 단가 간의 ‘미스 매치(miss match)’ 현상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사태 파악에 들어간 것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된 업계에 대해서는 조만간 대안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도 30일 이례적으로 20여 개 대기업의 구매담당 임원들을 불러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으니 대기업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단가 조정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 ‘구매 타이밍’ 눈치 보는 중소기업들

원자재 구매 타이밍을 둘러싼 중소기업들의 ‘눈치작전’도 심해지고 있다. 가격 상승 추세는 큰 흐름이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도중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를 포착해 구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조달청에서 원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중소기업 480여 곳 중 311곳을 관할에 둔 인천지방조달청에는 최근 중소기업들의 원자재 구매 관련 문의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지난달까지 인천지방조달청의 실제 원자재 방출 규모는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의 75% 수준에 그쳤다. 국내 건설경기의 회복세가 다른 산업에 비해 더디다는 이유도 있지만 대량 구입하는 업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S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당장 필요한 양만 구입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업체가 원자재 가격이 지금보다 더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조정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M알루미늄 관계자도 “경비 줄이기의 핵심을 원자재 구입 가격 절약으로 보고 있고 가격 조정기에 대량 구입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조달청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을 때 예년보다 구입 물량을 늘렸다. 이에 따라 조달청의 전체 품목별 비축 일수는 2008년 말 기준 평균 27.1일분이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평균 47.9일로 20일 정도 늘었다. 김병안 조달청 원자재총괄과장은 “올해 워낙 가격 상승폭이 커 지난해 비축량을 늘리지 않았으면 가격 상승과 물량 부족을 동시에 경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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