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충돌 없이 끝난 노동절 행사 노동절인 1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비롯해 2000여 개 진보단체로 구성된 ‘120주년 세계 노동절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대회에는 야당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비롯해 조합원 1만5000여 명이 참가(경찰 추산 6000명)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이훈구 기자
노동조합 전임자가 유급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Time off·유급 근로시간 면제제도) 인정 범위가 확정돼 노조 전임자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앞으로 노동계 판도와 노동운동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사실상 노조 전임자가 220여 명인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조합원 약 4만5000명)는 전임자 수를 7월부터 10분의 1 수준인 24명으로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위원장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1일 새벽 위원회 표결을 통해 타임오프를 조합원 수에 따라 차등 배분한 타임오프 한도를 확정했다. ▶표 참조
이날 표결은 노동계의 물리적 저지 속에서 위원 15명 중 찬성 9명, 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노동부는 이르면 이달 중순 확정 안을 고시할 예정이다.
노조 상급단체 파견자 줄어 강경 정치 투쟁 약화될 듯
양 노총 “법정 의결시한 넘겨 원천무효” 재계 “정치적 결정” 中企 “전임자 늘 것” 이번 타임오프 한도 확정으로 국내 노동계 판도는 물론이고 노동운동 양상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 노조는 물론이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의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 방향도 과격·정치 투쟁노선에서 조합원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한 실용노선 쪽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 노조의 구조조정 불가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현재 140여 명 수준인 전임자 수를 7월 이후 19명으로, GM대우자동차지부는 91명에서 14명으로 각각 줄여야 한다. 철도노조는 60여 명에서 17, 18명으로 줄어든다. 만약 노조가 과거 수준으로 전임자 수를 유지하려면 이들의 임금은 조합비로 충당해야 한다. 물론 이 경우도 회사가 무급 노조 전임자를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반면 조합원 수가 300명 미만인 중소 규모 사업장 노조는 0.5∼2명의 유급 전임자를 둘 수 있어 노조활동에 큰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조합원 100∼299명 이하 사업장의 지난해 평균 노조 전임자 수는 1.3명이다. 김태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장은 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중소사업장 노조는 노동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축소 폭을 최소화하고, 대기업 노조는 자체 재정으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할 수 있어 축소 폭을 크게 잡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번 타임오프 한도 확정으로 1만 명 이상 대기업은 전임자 수가 종전보다 약 7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노사가 이면합의로 타임오프 한도 이상의 전임자를 둘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된다. 노동부는 “확정 안은 7월부터 시행되지만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 개정 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노조는 순차적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 노동운동 성격도 크게 변할 듯
노조 전임자 수 축소는 양대 노총 등 노조 상급단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상급단체는 사업장에서 파견된 노조 전임자와 이들 단체가 고용한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타임오프 확정 안에는 상급단체 파견자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하지만 사업장 노조 전임자 수 축소에 따른 상급단체 파견자 감소는 불가피하다. 지금은 회사가 사업장 노조 전임자와 상급단체 파견자에게까지 임금을 지급했지만 이제는 사업장 전임자에게만 임금을 지급하면 되기 때문. 물론 개별 사업장 노조가 인력 부족을 감수하고 인원을 나눠 파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그동안 국내 노동운동이 과격·강성·정치 투쟁 모습을 띤 이유가 소위 ‘직업 노동운동가’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타임오프로 전임자 수가 축소되면 직업 노동운동가 수도 줄어든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들은 회사에서 일은 하지 않고 수십 년간 노조에서 월급을 받으며 각종 집회 및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 등 노조가 조합원과 관계없는 정치 투쟁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 노동계와 산업계 모두 반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2일 “위원회 표결은 법정 의결 시한(4월 30일)을 넘겼기 때문에 원천무효”라며 “위원회가 노동계 반발을 힘으로 제압하고 표결을 강행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노조 말살 폭거를 자행한 위원회와 이를 사주한 정부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이를 위한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도 근면위가 확정한 근로시간 면제한도는 개정 노동관계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4단체도 이날 내놓은 공동 성명서에서 “확정 안은 노사관계 선진화보다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며 “건전한 노사관계 확립을 위해 타임오프 한도는 더욱 축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보다 노조전임자를 더 늘릴 여지가 생긴 중소기업계는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계 현실을 도외시한 채 노조 전임자 비용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김태기 위원장은 “표결 자체는 5월 1일 새벽에 이뤄졌지만 이미 전날 오후부터 회의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법적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며 “정상 절차에 따라 확정 안이 결정된 만큼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부칙에 있는 국회 의견을 듣는 절차는 거치지 않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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