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로비에 고객 ‘통곡의 벽’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4일 03시 00분


7월 완공 현대카드 사옥 ‘고객만족 경영’ 혁신 실험

《기업이 가장 드러내기 싫어하는 비밀 중 하나는 고객의 불만이다. 고객 불만 리스트는 바로 회사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불만을 모아 외부인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사옥 로비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기로 한 회사가 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7월 말 완공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본사사옥 2관 로비의 한쪽 벽면에 60대의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하고 콜센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한 고객들의 불만이 올라오는 시설을 만들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 회사는 이곳을 ‘통곡의 벽’으로 부르기로 했다.》
한쪽벽에 LED스크린 60대… 민원 실시간 공개

全부서 잘못한점 고해성사… 397 개 과제 선정 개선 나서
임원은 매달 불만1건 해결… 결과보고서는 평가에도 반영

원래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기원전 20년경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벽이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이 성벽을 파괴하고 많은 유대인을 죽이자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밤마다 남은 성벽에 모여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이렇게 명명됐다.

‘통곡의 벽’은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회사의 잘못된 서비스 때문에 고객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알아야 한다”며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한 아이디어. 앞으로 현대카드 임직원은 회사를 출입할 때마다 ‘통곡의 벽’을 보고 고객의 불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객서비스 전담부서만이 다루던 고객의 불만을 회사 안팎의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 비슷한 불만이 되풀이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카드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고객만족도를 높이지 못하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 사장은 “현대카드가 지난 몇 년간 외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고객만족에는 총력을 못 기울인 것이 사실”이라며 임원과 팀장들에게 고객이 콜센터나 본사를 찾아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녹음해 들려줬다. ‘우리가 얼마나 고객에게 고통을 주며 장사를 하고 있는지 알도록 하겠다’는 충격요법이었다.

정 사장은 또 모든 부서에 “고객이 만족하지 못할 만한 문제점을 찾아서 ‘고해성사’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말까지 모두 530건의 고해성사가 접수됐고 그중 397개가 개선과제로 선정됐다.

현대캐피탈의 신용대출 고객이 가장 많이 제기하는 불만은 계약한 일정보다 일찍 빌린 돈을 갚을 때 고객이 회사에 지불하는 ‘중도상환수수료’다. 대부분은 수수료 부과 자체가 아니라 “왜 계약할 때는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특정 영업사원이 판매실적을 위해 상품을 성실하게 설명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고 반복될 경우 해고한다.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할 때 노년층이 ‘긴 번호 안내’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자 최근 65세 이상 고객은 주요 메뉴를 생략하고 곧바로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도록 바꿨다.

지난달부터 현대카드의 모든 임원은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매달 고객 불만사례 중 1건을 직접 맡아 문제의 근본원인을 조사해 해결하고 결과보고서를 내야 한다. 과제에 대한 실적은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섣불리 고를 수도 없다.

현대카드에는 할인권 가맹점인 한 외식업체를 3회 이용하면 다음 방문 때는 샐러드바만 주문하면 바비큐 포크립을 무료로 주는 서비스가 있다. 지난달 한 고객이 “왜 무료 서비스를 준다면서 샐러드바를 주문해야 한다는 조건을 다느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 사례를 과제로 택한 황용택 마케팅실 이사는 일부 고객이 왜 무료 제공의 조건을 몰랐는지 확인했다. 현대카드 측은 이 서비스 안내를 1, 2회는 단문문자메시지(SMS)로 보내고 3회부터는 샐러드바 이용 조건까지 넣어 장문문자메시지(MMS)로 보냈다. 하지만 일부 구형 휴대전화는 MMS 메시지를 제대로 못 받는다는 사실을 회사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 황 이사는 고객서비스팀과 상의해 장문문자메시지를 폐기하고 SMS 두 개로 쪼개 보내도록 바꿨다. 대부분의 고객 불만은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 비롯됐다.

김진태 경영지원본부 이사는 “고객만족을 하겠다는 회사는 많지만 실제 고객만족을 돈보다 우선시하는 회사는 찾기 어렵다”며 “전 임직원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고객을 만족시키지 않고는 절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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