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대책 추진 100일 긴급점검]<下>한숨 쉬는 구직자, 머나먼 취업의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구직자 10명중 8명 “정부대책 도움 안돼”

“현실과 먼 뜬구름 대책 많아 中企지원-직업교육 더 필요”
일자리정책 평가 29점 ‘F학점’

“단기 일자리 중단해야” 61%
청년실업에 우선순위 밀려… 장년실업 무방비상태 방치

디자이너를 꿈꾸는 황윤정 씨(24·여)는 2007년 대학을 중퇴한 뒤 올해 2월부터 인천시청의 청년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저녁에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고 있다.

기자가 “디자이너를 모집하는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게 낫지 않느냐. 고졸 이하 미취업자가 인턴으로 취업하면 정부가 6개월 동안 임금의 50%를 지원해준다”고 말하자 황 씨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동아일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5∼22일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를 통해 구직자 118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직자 10명 중 8명은 이처럼 ‘정부 대책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올해 이명박 대통령 주재의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신설하고 각종 일자리 정책을 쏟아냈지만 구직자들이 매긴 점수는 28.7점(100점 만점)으로 F학점 수준을 면치 못했다.

○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정책

경남 창원시의 한 중소기업에서 기계영업을 했던 권해찬 씨(33)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올해 정부의 일자리 정책들에 10점을 주며 “대부분의 정책이 임기응변에 해당하고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권 씨는 3년 이상 실직자가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월 100만 원씩 소득공제를 해준다는 정책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방 중소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취업할 수 있는데 3년간 미취업 상태라는 것은 대기업만 바라본다는 뜻”이라며 “장기 미취업자가 정부 혜택을 보고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씨는 “창원이 기업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주 5일제를 어기거나 초과 근무 계산을 제대로 안 해주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현재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복지혜택을 늘려야 중소기업에 오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하는 김모 씨(28)는 일자리 정책에 0점의 점수를 줬다. 그는 “중소기업 취업은 당장 부모님이 말릴 텐데 정책적 혜택을 준다고 대졸 구직자가 중소기업에 입사하겠느냐”며 “중소기업 인력난과 고학력 실업자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만든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1월부터 정부가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일자리 정책이 구직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설문 대상의 82.4%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41.9%는 ‘정부가 뜬구름 잡는 정책들만 내놓고 고용 현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홍보 노력 부족으로 일자리 대책이 수요자층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올해 1∼4월에 발표했던 주요 일자리 대책 10개의 예를 들고 ‘유용했던 것을 선택해 달라’고 하자 응답자 중 30.5%가 “잘 모른다”고 답했다.

○ 청년인턴제 임시변통 안 돼야

대기업 인사부에서 20년을 근무하고 2004년에 퇴직한 김모 씨(52)는 지금까지 10군데가 넘는 곳에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서류전형에서 거의 탈락하고 있다.

김 씨는 “기업들이 나이를 보고 한 번 거르고, ‘대기업 수준의 혜택을 기대할 것’이라고 보고 또 거르다 보니 면접조차 보기 힘들다”며 “정부 대책이 너무 청년실업에 맞춰져 있어 베이비붐 세대들이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경력직에 원서를 내면 30∼40명의 유사 경력자들이 지원할 정도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이후 취업에 무방비상태인데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왜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년층을 위한 대책이 부족하다’(17.3%)는 응답도 상당히 많았다.

청년인턴, 희망근로사업 등 단기 일자리 정책에 대해 61.2%는 “임시변통에 그치는 사업에 재정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정모 씨(26·여)는 “지난해 6개월 동안 공기업에서 청년인턴을 했는데 서류정리와 잔심부름으로 시간만 낭비한 느낌”이라며 “임시적인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직업교육을 민간 사설학원 수준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시청에서 청년인턴을 하는 황윤정 씨도 “후배 인턴들을 위해서라도 청년인턴은 꼭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직자들은 향후 정부가 중점적으로 펼쳐야 할 정책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늘려 대기업만큼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33.1%)와 ‘맞춤형 직업교육을 통해 구직자의 취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30.4%)는 항목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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