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긴데요, 용돈 3만 원으로 북한산과 양수리 중 어디로 여행하는 게 좋을까요?”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이승기 인증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한 예능프로그램 촬영 중 자유여행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 질문을 남겼죠. 많은 답변을 얻기 위해 이름까지 밝히며 친절히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댓글들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니가 이승기면 난 이영애다.”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라.”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짜 이승기의 글인지 증거가 없기 때문이죠. 그저 한 팬의 ‘낚시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며칠 후 진짜 이승기가 썼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방송에서 그가 ‘1박2일’ 멤버들과 인터넷에 글을 쓰는 모습이 방영됐기 때문이죠. 이후 그 글이 ‘VIP’ 대접을 받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인증 완료! 이승기 글 남기다’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논객이 남기는 수백 수천 개의 글들. 그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위해 요즘 인터넷에선 ‘인증샷’이 필수조건입니다. 인증샷은 본인이 쓴 글이나 행위를 증명하는 ‘인증(認證)’과 사진을 뜻하는 ‘샷(Shot)’의 합성어입니다. 회원 가입 시 자신임을 증명하는 ‘셀카(셀프카메라)’부터 글 속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물 사진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인증샷=신뢰’ 공식을 바꿔 말하면, 주장을 하기 위해선 눈으로 보여주는 인증샷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선 이제 글만 갖고 활동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죠.
그렇다 보니 때로는 의욕이 지나쳐 화를 부르기도 합니다. 한 게임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딸기츔’이란 누리꾼은 얼마 전 ‘도서관 성추행 인증샷’이라며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여성의 다리를 몰래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스스로를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과감한 인증샷 덕분에 순식간에 유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죠.
인기를 얻은 그는 이후 자극적인 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야한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매일 한 편씩 올립니다. 다른 사이트까지 이름을 떨칠 때쯤 다리 사진의 주인공인 여대생이 경찰에 고소했고, 그는 불구속 입건됩니다. 알고 보니 이 누리꾼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20대 대학생이었고, 그간의 경험담도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습니다. “누리꾼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그의 말은 이미 때늦은 후회일 뿐이었죠. 이 사건은 인증샷이 있어야 믿고 없으면 무시하는 현재 온라인 문화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놈의 인증샷이 뭐기에…. ‘월드와이드웹(www)’이라 불리는 시대, 우리는 그간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히며 가까워졌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감은 ‘얼기설기’ 엮여 가는 듯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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