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exit strategy)의 핵심인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가계와 중소기업에 미치는 충격은 얼마나 될까. 0.25%포인트만 올려도 가계와 중소기업의 연간 이자 부담은 각각 1조 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경기회복세가 빨라져 금리를 올리더라도 가계와 중소기업의 부도율은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17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 553조2000억 원 가운데 약 90%인 497조9000억 원이 변동금리형 대출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한은이 2.0%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고 금융회사들이 그만큼 대출금리를 올릴 경우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은 연간 1조2500억 원에 이른다.
만약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대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3차례 인상할 경우 가계의 추가 이자 부담은 3조7300억 원으로 불어난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3분기에 두 차례, 4분기에 한 차례 등 총 3차례에 걸쳐 올해 말까지 2.75%로 인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소기업의 부담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중소기업대출 잔액 601조1000억 원 중 변동금리형 대출이 420조800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0.25%포인트 금리가 오르면 중소기업의 추가 이자 부담은 1조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0.75%포인트 올릴 경우 추가 이자 부담은 3조16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이처럼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되는데도 금리인상론이 힘을 받는 것은 경기회복세가 확실한 데다 초저금리를 방치할 경우 가계 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올해 경제가 5.2% 성장하고 가계 및 기업 부채가 지난해의 증가세를 유지한 채 대출금리가 소폭 상승하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 부도율이 전년 대비 각각 0.11%포인트, 0.1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기준금리 인상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했다.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이 가계와 중소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원리금 분할 상환 방식의 대출을 받은 가계에 대해 금융회사들이 만기를 최대한 연장해 주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만기를 늘릴수록 월별 원리금 상환액이 줄기 때문에 이자 부담을 어느 정도는 덜 수 있는 까닭이다.
또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연동형 대출보다 금리 변동 주기가 길고 안정적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은 별도의 수수료 없이 코픽스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시한을 8, 9월경에서 추가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6일 기준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지 하루 만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금리인상을 반대하고 나섰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리조정 시점에 대해 국책연구기관들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KIEP는 17일 ‘정책금리 인상을 위한 대내외 경제여건 평가 보고서’를 통해 “저금리의 위험이 과장돼 있다”며 “지금의 물가수준과 경제상황을 볼 때 당분간 정책금리 인상을 미뤄도 된다”고 밝혔다.
KIEP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를 조만간 금리 인상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부동산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보기 힘든 만큼 저금리에 따른 자산시장 과열을 이유로 금리를 높이기는 적절치 않다고 봤다. 실제 2010년 4월 현재 한국의 주택가격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3.3% 오르는 데 그친 반면 중국은 11%나 올랐다. 금리를 조기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한국과 중국, 호주 등의 상황이 다른데도 저금리의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고 KIEP는 보고 있다.
또 물가상승률이 2분기 이후에도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2∼4%)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이는 데다 하반기 원화 강세(환율 하락)로 수입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며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분석했다. 4월 실업률이 3.8%로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보다 높고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다른 나라로 확산될 우려가 커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 있는 점도 금리인상을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이동은 KIEP 부연구위원은 “금리를 소폭이라도 올리기 시작하면 시장에선 통화긴축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경기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지금의 경제상황은 당분간 인상을 유예할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KDI는 전날 경제전망 자료를 통해 “금리인상 시기를 놓치면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물가 상승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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