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자 문이 닫히면서 안으로 5mm 정도 문이 밀려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내부와 문 사이의 틈을 막아 소음과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1층, 2층, 3층…, 층수를 가리키는 숫자는 평균 0.5초마다 하나씩 올라갔다. 155m 높이인 50층을 올라가는 데 2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5일 경기 이천시 현대 아산타워에서 선보인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의 모습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1분에 1080m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시간당 거리로 환산하면 64.8km에 해당한다. 현재 엘리베이터 중 가장 빠른 제품은 대만의 타이베이 101빌딩에 설치된 것으로 분속 1010m다.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1분에 600m를, 서울 63빌딩 전망대 엘리베이터는 1분에 540m를 가며, 최근 지어지는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분속 120∼150m 수준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날 초고속 엘리베이터 외에도 한 승강로에 수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2대가 동시에 운행돼 건물의 공간 효율을 높이는 분속 600m의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등 다른 제품도 전시했다. 분속 420m인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자 순식간에 땅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승한 심영석 현대엘리베이터 부장은 “이 승강기가 내려갈 때 속도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와 비슷하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비와 함께 내려가는 것 같은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제품에는 귀가 먹먹해지는 현상을 막아주는 기압제어장치, 떨림을 막는 횡진동 제어기 등 각종 첨단기술이 적용됐다. 다중 안전장치가 있어 모터나 제어장치에 일부 이상이 발생해도 연속 운행이 가능하고, 운행 중에 발생하는 에너지를 다시 회수해 전기도 절약한다. 특히 이들 기술은 시스템 전체를 국내 역량으로 개발해 로열티 걱정이 없다고 했다.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은 연간 1조5000억 원, 세계 엘리베이터 시장은 연간 40조 원 규모다. 그러나 분속 600m가 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초고층 빌딩에만 필요하기 때문에 수요가 연간 50∼100대 수준에 불과하고, 분속 1000m인 엘리베이터 시장은 그보다 더 작다. 그럼에도 이 같은 제품을 개발한 이유에 대해 송진철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우리 기술력을 보여줘서 외국 업체들이 만들어 놓은 진입장벽을 뚫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명 랜드마크 빌딩의 경우 대부분의 설계업체가 외국계 회사다. 엘리베이터 시장은 이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구조여서 한국의 후발업체가 그 틈을 뚫고 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심지어 새로 짓는 서울시청 신청사나 전경련회관처럼 한국의 랜드마크 빌딩도 국내 엘리베이터 업체가 수주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송 사장은 “국내에서 추진 중인 랜드마크 빌딩에 우리 회사 제품을 적용하기 위해 전략적인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며 “빌딩 건설을 위해 설립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투자 요청을 하면 동반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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