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는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잔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졌다. 지정학적 위기도 더해졌다. 당초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경고가 나왔을 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는 달리 위기의 실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유럽지역의 재정적자 규모는 명확하다. 그런데 문제는 재정위기가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6.8%이다. 이미 미국의 경기선행지수,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와 같은 매크로 지표에서 경기 모멘텀 둔화의 시그널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까지 가세한다면 글로벌 투자심리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전 세계의 경제 파이가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파이가 줄어든 만큼 글로벌 제조 국가 간의 경쟁 구도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 중심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경쟁 구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역별 수출 비중은 비슷하다. 총수출액에서 선진국 수출 비중이 40%, 그중에서 유럽 수출 비중이 40%대다. 선진국 경기 둔화에 대한 영향은 양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승부는 기업의 기초체력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두 나라 간의 경쟁구도에서 한국이 유리한 쪽에 있다는 점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한국의 매출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일본보다 빠른 회복 속도를 보여 왔다. 먼저 매출 회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 현금으로 먼저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성장 동력이 준비된 셈이다.
둘째, 일본의 신용등급 하향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선진국 가운데 공공부채율이 가장 높은 일본의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면 ‘신용등급 하향-엔화 가치 하락-한국 수출주의 가격경쟁력 약화’ 시나리오를 연상할 수 있다. 수출 전선에서 한국 기업이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엔화 가치가 하락했던 2000∼2002년에는 한국 수출주 주가가 일본 수출주 주가보다 더 강했다. 당시 한국 기업은 매출 성장률과 이익마진율에서 일본 기업보다 앞서 있었다. 환율이 주는 악영향보다는 양호한 기초체력에 주가가 더 많이 반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도 한국 기업의 펀더멘털이 일본 기업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빠른 매출 회복을 바탕으로 순이익마진도 더 높다. 운전자금에 대한 부담도 개선되고 있다. 이는 자금 회전이 잘되고 있어 불필요하게 여유자금을 많이 비축해둘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당면 악재에 대한 시장의 반응 과정이 끝나면 글로벌 투자 대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 기업의 한판승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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