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수요가 가장 많은 중형 세단 부문에서 이렇다 할 차를 내놓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만 놓고 보더라도 콩코드, 크레도스, 옵티마, 로체 등의 모델이 나왔지만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아성을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 기아차가 중형차 시장에서 겪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차가 ‘K5’다.
쏘나타를 넘어서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 K5는 YF쏘나타와 차별화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차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엔진룸과 객실, 트렁크의 비율부터 차이가 난다. 이 비율이 쏘나타는 24 대 64 대 12로 엔진룸이 트렁크보다 정확히 2배 길다. K5는 26 대 64 대 10으로 쏘나타에 비해 엔진룸은 길고 트렁크의 길이는 짧아져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이 난다.
K5의 외관은 기아차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고 있는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기아차에 몸담은 이후 나온 차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뛰어나 보인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기아차 디자인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구상 한밭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K5에 대해 “그 시절 꿈꿨지만 실현할 수 없었던 외관이 지금 현실에서 구현됐다”고 평가했다. 디자인대로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아차의 기술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차량 내부는 센타페시아 각도를 9.6도 운전자 쪽으로 튼 게 인상적이다.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서라는 게 기아차의 설명인데 디자인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K5는 쏘나타와 같은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행성능은 차이가 없다. 힘이나 연료소비효율, 순간가속력이 거의 비슷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차가 달리는 동안의 느낌은 서스펜션 설계를 달리해서 차별화할 수 있다. 서스펜션 설계에 따라 운전자가 의도하는 대로 재빠르게 반응하는지를 뜻하는 핸들링 능력과 승차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승차감과 핸들링 능력은 어느 정도 반비례 관계여서 두 가지 모두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기아차는 승차감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핸들링 능력에 주안점을 두는 쪽이었는데 K5는 승차감을 높이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듯했다. 기아차의 준대형 세단 K7과는 확연히 비교가 될 정도로 서스펜션이 부드러웠다. 쏘나타보다 더 부드럽게 설계됐다는 게 기아차 관계자의 설명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쏘나타와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정차해 있을 때 정숙성은 뛰어나지만 시속 100km 이상 달릴 때 타이어가 노면과 닿아서 나는 소음은 옆 좌석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를 방해하는 수준이어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사전 계약한 1만7000여 대 중 대다수가 2.0 모델이고 2.4 모델은 7%에 불과한데도 시승행사에 2.4 모델만 배치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중형차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아직은 자신감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가격은 2.0 모델이 2145만∼2725만 원, 2.4 모델은 2825만∼2965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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