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즐겨 하는 말 중 하나는 ‘합종연횡의 시대’다. 얼핏 들으면 새로운 게임의 이름 같지만 최근 국내 게임업계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엔씨소프트, 넥슨, 한게임, 네오위즈게임즈, CJ인터넷 등 이른바 ‘빅5’라 불리는 메이저 게임업체들이 최근 이름난 중견 게임개발사부터 신생회사까지 인수합병(M&A)을 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인수당하는 중소업체들은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 5월 한 달간 발표된 인수 및 지분 투자만 5건. 한 주에 한 건 이상 일어난 셈이다. 1996년 넥슨의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국내 온라인 게임업계가 메이저 개발사들의 주도하에 재편되고 있다.
○ 새 게임 대신 새 계약을
메이저 업체들의 인수 방식에는 각기 다른 개성이 묻어난다. ‘콘텐츠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엔씨소프트는 잠재력 있는 신생 게임사를 발굴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인수의 목표다.
‘리니지’ ‘아이온’ 등 소위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으로 이름을 알린 엔씨소프트엔 상대적으로 가벼운 캐주얼게임이 필요했다. 2008년 리듬액션 게임 ‘러브비트’를 만든 개발사 크레이지다이아몬드 인수부터 지난달 11일 캐주얼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개발한 넥스트플레이 인수까지 대부분 이런 의도로 진행됐다.
캐주얼게임 왕국으로 불리는 넥슨은 지난달 26일 1인칭 총싸움 게임(FPS) ‘서든어택’을 개발한 ‘게임하이’를 732억 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2주 전에는 ‘군주’ ‘아틀란티카’ 등으로 알려진 개발사 엔도어즈를 인수했다. 게임하이와 엔도어즈는 지난해 각각 415억 원, 40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국내 대표 중견게임업체다. 넥슨은 검증된 업체를 인수해 회사 규모를 키운다. 넥슨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7000억 원으로 게임업계 1위를 차지했다”며 “올해 활발한 인수를 통해 매출 1조 원을 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단순히 콘텐츠가 있는 개발사를 인수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인수를 통해 게임 개발 및 유통을 아우르는 ‘종합게임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노력도 보인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지난달 20일 127억 원에 인수한 게임업체 씨알스페이스는 해외 60개국에 자사 게임을 서비스한 경험을 갖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 경험이 있는 개발사를 인수했다”는 것이 이상엽 네오위즈게임즈 대표의 설명.
이 밖에 NHN의 자회사이자 게임 개발사인 NHN게임스는 2008년 웹젠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가 올해 4월 ‘웹젠’으로 아예 합병했다.
○ 온라인 게임업체도 양극화
메이저 업체들이 몸집을 불리는 데는 차세대 온라인게임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예전에는 ‘인재 빼오기’를 하다가 최근에는 아예 회사 자체를 인수해 몸집을 불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한 메이저 게임업체 관계자는 “2008년 말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 등장한 뒤 최근까지 이렇다 할 대박 게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국내 온라인 게임업계의 현실”이라며 “메이저 회사들의 자금력과 톡톡 튀는 중소업체들의 결합으로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 중소게임업체 대표는 “대부분 ‘허리’ 역할을 하는 이름 있는 중견기업들이 인수되고 있다”며 “‘선택받지 못한’ 소규모 업체들은 점점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글로벌시장 공략과 유통 채널 다변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한 개발사도 있다. ‘스페셜포스’로 유명한 게임 개발사 ‘드래곤플라이’는 게임 개발만 하다 최근 해외 게임 유통 사업팀을 만들었고 중국과 싱가포르에 해외법인을 세우는 등 해외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회사 마케팅팀 정대훈 과장은 “현재는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해외시장에서 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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