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크게 3종류의 세단이 있다. BMW처럼 승차감이 튀더라도 핸들링을 중시하는 ‘스포츠형’, 메르세데스벤츠처럼 BMW보다 핸들링은 약간 떨어지지만 고속에서 안정성이 높아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도가 낮은 ‘안정형’, 렉서스처럼 승차감이 다소 물러서 노면의 충격을 잘 걸러주지만 고속주행에서는 조금 불안한 ‘안락형’이다.
이 3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킨다면 최상이지만 기술적으로 상충하는 부분이 많아 자동차회사들은 3가지를 놓고 적절히 조율을 한다. 하지만 최근 전자기술의 발달로 3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BMW의 신형 5시리즈다. 최근 306마력 3.0L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간 ‘535i’(사진)를 1000km 정도 시승했다. 첫인상은 ‘BMW가 변심했다’는 것이다. 일단 디자인을 보면 앞모습은 영락없는 신형 7시리즈로 중후함이 느껴지고 덩치도 커졌다. BMW가 지향하던 스포츠세단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 대신 좀 비싸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5시리즈는 ‘궁극적인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자신들의 슬로건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연결고리를 살짝 느슨하게 했다는 인상을 준다. 운전을 해보면 엔진음이나 배기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타어어 소음도 줄었다. 엔진 소리를 어느 정도 즐기도록 하는 BMW의 제조 철학에 변화가 온 셈이다. 과거에는 ‘운전의 재미’가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편안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 같다. BMW 마니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많이 팔릴 차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가속페달을 거칠게 밟아도 306마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부드럽다. 그런데 실제 속도는 빠르다. 제원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6.1초지만 5.9초까지도 나왔다. 하지만 기분은 7초대 세단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이 어우러져 대형 럭셔리 세단처럼 속도감이 비현실적으로 낮게 느껴진다. 시속 150km인데 80km로 달리는 기분이다. 이제 BMW를 두고 스포츠 세단이라거나 짜릿한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말은 약간 안 어울린다.
8단 변속기와 고효율 엔진의 만남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연료소비효율을 놀라울 정도로 높였다. 서울 시내는 L당 8km 안팎, 시속 100km 정속주행은 16km나 나왔다. 강해지고 효율이 높아졌지만 부드러운 ‘535i’. BMW 마니아들과 일반 운전자들의 반응은 엇갈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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