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장터’는 국내 대부분의 와인 판매점에서 실시하는 인기 행사다. 이 행사가 지금처럼 인기가 높아진 데에는 ‘라벨 불량 와인’의 공이 혁혁하다. 국내에 장터가 처음 개설된 2003년 초반까지만 해도 라벨이 찢어졌거나 외관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품되는 와인은 수입사들에는 골칫거리였다.
내용물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으로는 분명히 상품성을 잃은 이 와인들을 어느 와인 소매 회사가 매입하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수입사들은 의아해했다. 외관이 불량한 와인을 처분한 것에 더해 물류 창고의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며 고마워하는 수입사까지 있었다. 소매 회사는 이렇게 저렴하게 구입한 와인에 아주 적은 이익을 붙여 시장에 내놨고 이 소식을 접한 와인 애호가들은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이후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라벨 불량 와인이 가장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거듭났음은 물론이다. 라벨 불량 와인은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와인 애호가들이 ‘만세’를 부를 만한 와인이 또 있다. 와인 중에 불투명한 하얀 부유물 또는 작은 유리알처럼 보이는 물질이 보이는 화이트 와인이 그것이다. 전자는 미처 걸러지지 않은 효모 찌꺼기일 가능성이, 후자는 숙성 과정에서 포도의 주석산이 칼륨, 칼슘과 반응해 결정화된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주석(酒石) 또는 주석산염으로 불리는 이 성분은 품질이 좋은 해의 와인이 산(酸)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와인의 다이아몬드’라는 근사한 별명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다.
사람 몸에는 무해하지만 외관상 문제가 있고 입에 넣었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아 이들 물질은 양조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진다. 하지만 완전히 걸러지지는 않아서 와인 속에는 이들 물질이 소량 남아있는데, 와인이 오랜 시간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생성된다. 침전물이 있는 와인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국내 와인숍들은 이런 와인을 초특가로 단골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레드 와인 중에도 침전물이 발견되는 와인이 있다. 와인병 펀트(와인병 바닥에서 안쪽으로 볼록 올라간 부분)의 주된 기능,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병 모양이 다른 이유, 디캔팅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공통적으로 침전물을 거르는 데 있다. 다만 레드 와인 속 침전물은 와인의 색깔 때문에 병을 열기 전까지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침전물은 와인의 맛과 향을 복합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양조업자에 따라서는 거르는 과정을 생략하기도 한다.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화이트 와인 속에 불순물이 있다면서 반품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덕분에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은 와인 애호가들이다.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구입해 보겠다며 경쟁률 높은 라벨 불량 와인에 목매지 말고 올여름에는 와인숍에 ‘침전물 보이는 화이트 와인’이 있는지 문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주 와인
리슬링 아우슬레제 벨레너 조네누어 요한 요제프 프륌
요한 요제프 프륌은 10∼30년의 숙성력을 보여주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독일의 전설적인 와이너리다. 유럽에서 가장 경사가 가파르기로 유명한 포도밭 조네누어에서 수확한 리슬링 품종 100%로 빚은 이 와인은 산미와 감미의 조화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했기 때문에 주석산 함량이 높아 양조과정에서 다량의 주석이 생성된다고 소문 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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