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달팽이 기어가듯… 도시의 삶 전체가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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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5일 03시 00분


슬로시티 본고장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슬로시티의 본산 오르비에토 전경. 900년 역사를 가진 성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어 요새 분위기가 물씬 난다. 도시 전체에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면서 지역경제도 살리겠다는 슬로시티의 철학이 녹아 있다. DBR 자료 사진
슬로시티의 본산 오르비에토 전경. 900년 역사를 가진 성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어 요새 분위기가 물씬 난다. 도시 전체에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면서 지역경제도 살리겠다는 슬로시티의 철학이 녹아 있다. DBR 자료 사진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 오르비에토라는 소도시가 있다. 해발 195m의 바위산에 위치한 이 도시는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다. 케이블카나 협궤 기차를 타야만 한다. 언뜻 보면 매우 불편해 보이지만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오르비에토를 방문한다. 자동차 통행이 없는 도시에서 한적하고 고요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오르비에토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슬로시티(slow city)국제연맹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슬로시티는 슬로라이프(slow life), 즉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림’을 삶의 화두로 택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을 말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달리
먹을거리 직접 재배하며 유유자적
패스트푸드점-대형마켓도 없어
친환경-슬로라이프 도시 브랜드화
연간 관광객 200만명 몰려와


오르비에토 사람들은 자신의 농장에서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한다. 대형 슈퍼마켓과 할인점도 없다. 오르비에토는 관광객과 다국적 대기업의 침투로 도시의 전통과 정체성이 흔들리자 전략적 대안으로 슬로시티를 선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58호(6월 1일자)에 실린 오르비에토의 성공 비결을 간추린다.

슬로시티의 기원은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이다. 1986년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로마의 중심부인 스페인 광장에 매장을 내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통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곳곳에서 고유의 음식을 지키려는 모임을 만들고 슬로푸드 캠페인을 벌였다.

예수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는 오르비에토 두오모.
예수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는 오르비에토 두오모.
1999년에는 ‘느림’이라는 화두를 단지 음식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도시의 삶 전체에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바로 슬로시티 운동이다. 당시 오르비에토 시장은 인근의 그레베인키안티, 포스타노, 브라 등 3개 도시 시장들과 함께 ‘자연과 전통문화를 잘 보호하면서 경제도 살려 따듯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모토를 내걸었다. 캠페인의 로고도 느림보의 대명사 달팽이로 정했다.

슬로시티의 목적은 5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철저한 자연생태 보호, 둘째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셋째 천천히 만들어진 슬로푸드 농법 고수, 넷째 지역 특산품과 공예품 지키기, 다섯째 지역민이 주도한 지방의 세계화, 즉 ‘세방화(glocalization)’다.

이름 없는 소도시 오르비에토가 슬로시티 전략에 성공한 원동력은 다음과 같다. 먼저 환경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다.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속속 몰려오자 농업 위주의 오르비에토 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이 상황에서 슬로푸드 트렌드를 포착하고 이를 슬로시티라는 라이프스타일 콘셉트로 확장시킨 게 주효했다.

둘째, 다른 도시와의 발 빠른 연대다. 인구 2만 명의 소도시인 오르비에토의 노력만으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널리 전파하기 어렵다. 이에 오르비에토는 제반 환경과 지향점이 비슷한 3개 도시와 연대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갔다.


셋째, 슬로시티 요건을 규정한 인증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세계 표준으로 확장했다. 세계 각국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인증을 받으려면 슬로시티국제연맹의 까다로운 평가를 통과해야만 한다. 모두 24개 항목을 심사하는데 특히 5개 핵심 항목을 집중 검토한다. 인구는 5만 명보다 적어야 하고, 자연과 전통산업을 잘 보전해야 하며,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는 지역특산물이 있어야 한다. 패스트푸드 가게와 대형 슈퍼마켓도 없어야 한다.

넷째, 슬로시티국제연맹 등 국제기구를 유치해 슬로시티의 본산이라는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특정 분야의 허브가 되려면 관련 분야 대학, 국제기구, 기업이나 단체의 지역본부 등을 유치해야 한다. 오르비에토가 슬로시티국제연맹 본부를 유치한 이유다.

2009년 말 현재 세계에는 17개국, 123개의 슬로시티가 있다. 이탈리아가 67개로 가장 많다. 영국이 8개로 2위, 한국과 스페인이 6개로 공동 3위다. 폴란드가 5개, 벨기에와 포르투갈이 4개,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가 3개, 호주가 2개 등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한국에 슬로시티가 6개나 있다는 점도 놀랍다. 슬로시티국제연맹은 2007년 전남 신안군 증도면, 완도군 청산면, 장흥군 유치면과 장평면, 담양군 창평면 등 전남지역 4개 군을 슬로시티로 인증했다. 2009년에는 경남 하동군의 악양면, 충남 예산군의 대흥면과 응봉면도 추가로 인증했다. 제주도도 올레길의 인기에 힘입어 슬로시티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슬로시티가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유효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의 역사, 문화, 전통이 슬로시티 전략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늬만 슬로시티’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혹시 한국의 슬로시티 열기가 지나치게 빨리 달아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mjkim8966@hanmail.net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8호(2010년 6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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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어리 반품? 응대 잘하면 열혈팬 된다

▼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많은 기업은 반품을 싫어한다. 그래서 엄격하게 반품을 제한하는 정책을 펴는 회사가 적지 않다. 반품이 늘어나면 당장 기업에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신 연구 결과, 반품을 까다롭게 하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 성과에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품 정책이 관대하면 예상대로 손실이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이 늘어났다. 반품을 신청한 고객에게 성심을 다해 응대하면 해당 기업의 열혈 팬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대한 반품 정책을 도입해야 추가 구매 의향이 한층 강해진다는 설명이다. 쉽게 반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처음 구매를 결정하는 시점에 고객이 인지하는 위험 수준은 내려간다. 구매와 반품을 통해 고객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줄이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면 고객의 미래 구매가 늘어나 매출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골치 아픈 반품을 활용해 미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한다.

글로벌기업 되고 싶다면 ‘다국적 리더’ 육성하라

▼ ADL프리즘



각국 기업의 활동 무대가 세계로 확장되는 와중에도 유독 국내 시장을 벗어나지 못한 분야가 있다. 바로 최고경영자(CEO) 인재풀이다. 2008년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외국인 CEO를 둔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10대 기업 중 외국인 CEO가 있는 기업은 아일랜드 출신 CEO를 둔 미국 석유업체 셰브런 하나였다. 대다수 글로벌 기업은 여전히 본사가 위치한 국가의 내국인을 CEO로 임명한다. 국경을 초월한 CEO는 이제 막 등장한 개념에 불과하다. 현재 아무리 대단한 위용을 누리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이라 해도 외국인 경영진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가치 창출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임원은 타국 출신이라는 한계에 굴하지 않고 현재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런 인재들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해당 기업은 앞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인재를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업의 잠재적 가치 또한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맥아더의 ‘제왕적 리더십’ 사랑 받은 이유는?

▼ 전쟁과 경영



맥아더(사진)는 생전에 시기와 존경을 함께 받았던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거의 신처럼 행동했고, 찬양을 넘어 자기숭배의 수준으로 치달았으며, 부하들의 인격까지도 지배하려 했던 ‘제왕적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비판한다. 맥아더에게 그런 면모가 있었던 건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의 제왕적 리더십은 자기만족이 아닌 공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서였다. 그는 제왕적 리더십뿐 아니라 서민적 리더십도 갖추고 있었다. 초고속 승진을 한 덕에 그는 병사들과 나이 차가 가장 적은 장교였다. 그는 이 장점을 활용해 병사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최고의 인기 장교로 그가 꼽혔던 데는 병사들과의 잦은 스킨십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맥아더의 위대함은 서민적 리더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때로는 형님 같은 서민적 리더십을, 생명이 오고가는 절박한 상황에선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제왕적 리더십을 선보였다. 전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맥아더 리더십의 비밀을 집중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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