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남유럽 문제가 불거진 4월 하순 이후 12% 올랐다. 같은 기간에 문제의 진원이었던 유로 환율이 달러 대비 12% 정도 절하되고 남유럽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영국 파운드 스털링화의 달러 대비 환율이 7% 정도 절하됐으며 신흥시장(이머징마켓)으로 분류되는 남미나 태국 통화가치 하락 폭이 6% 이하였음을 감안할 때 이번의 원화 가치 절하 폭은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고유의 문제인 대북리스크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원화 가치는 일시적으로 4%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며칠에 걸쳐 곧바로 복원됐기 때문에 대북리스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즉 한국 외환시장 자체가 환율 변동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환율이 상승하면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들로 수출하는 데는 긍정적이다. 이 때문에 세계 경기 침체로 교역량이 줄어든 상태에서는 서로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장 일각에서 한국 정부가 환율이 떨어질 때는 열심히 방어하고 오를 때는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원화 가치의 급격한 절하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동성의 확대는 경제 전반에 걸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첫째, 국내 물가상승 압력을 높인다. 수입하는 물건의 원화 표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교역량이 커서 수입 규모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5%에 이르는 나라에서는 수입 결제 통화 대비 원화 가치의 하락이 바로 물가를 끌어올린다. 한국은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원유가격에 비해 거의 4배 정도 크다.
둘째, 수출 및 수입기업 수익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킬 뿐 아니라 투자를 위축시킨다. 게다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채권 투자 규모가 큰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의 확대는 곧 주가, 금리 등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높인다. 미래를 가늠해 가며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제 주체들로서는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 확대가 반가울 리 없다.
따라서 한국 정책 당국은 환율 변동성 축소를 위한 방법을 꾸준히 강구해야 한다. 물론 이미 개방이 된 상태에서 외국인의 국내 주식, 채권 투자를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규모 외화 차입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은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외화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방향은 타당해 보인다. 의도적인 환율 조작의 관점이 아닌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관점에서 적절한 대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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