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최고” 돈, 저금리에도 은행 몰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0일 03시 00분


유럽발 금융위기 속 5월 수신 18조원 급증
가계대출도 4조 늘어 3년5개월만에 최대폭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으로 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늘어나면서 은행으로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다. 은행예금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도 지난달 은행 수신이 1년 3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났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수신은 5월 말 현재 1039조2000억 원으로 전월 말보다 18조6000억 원 늘었다. 이는 지난해 2월 23조1000억 원이 늘어난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은행 수신은 예금금리가 낮아지면서 3월 16조2000억 원 감소한 데 이어 4월에도 3조4000억 원 줄었다가 석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정기예금에 비해 금리는 낮지만 언제든지 출금이 가능해 단기자금 운용에 주로 쓰이는 수시입출식예금(MMDA)에 지난달에만 10조4000억 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이는 7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던 4월과 비교하면 15배 가까운 증가폭이다. 정기예금도 12조4000억 원 늘어 전월(8조7000억 원)보다 증가폭이 3조7000억 원 늘었다.

현재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들의 4월 정기예금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평균 2.88%로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소득세와 주민세 15.4%를 공제하면 금리는 2.44%에 불과해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2.6%)보다도 낮다.

이처럼 은행에 돈을 맡기면 사실상 손해를 보는 상황인데도 은행 수신이 크게 늘어난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때문이다. 5월 한 달 동안 코스피가 최고 1,721.21에서 1,560.83까지 떨어지는 등 크게 출렁이면서 안전한 은행으로 자금이 몰린 것이다. 특히 현금이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투자보다는 MMDA 등 은행의 단기상품에 돈을 맡겨 수신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비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예금 유치에 나선 것도 은행 수신이 늘어난 이유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지난달 중순부터 정기예금 금리를 0.2∼0.3%포인트 올리며 자금 유치에 나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정기예금 금리가 오르기 전에 연 3% 중반인 현재의 싼 금리로 미리 자금을 확보해두겠다는 포석이다.

증가세가 주춤했던 가계대출도 지난달 들어 크게 늘었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4조4000억 원 늘어나 2006년 12월의 5조 원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대출이 늘어난 데다 지난달 초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을 위해 1조 원의 신용대출이 이뤄진 데 따른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도 2조3000억 원 늘어나 증가 폭이 전월의 2조 원보다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때문에 시중자금이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으로 몰렸다”며 “자금을 대거 유치한 은행들이 대출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가계대출 역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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