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전쟁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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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맥아더 ‘개구리 뛰기 전술’은 초긴축 전쟁의 결정판

맥아더 사단
전력상 절대적 열세

일본군 거점 우회
‘뒤통수 작전’ 구사

태평양전쟁
상륙작전 87회 전개

‘최소 비용 최대 전과’
경영 능력 발휘


맥아더 장군(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위대함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변화를 추진했다는 데 있다. 맥아더는 일본군의 약점을 명확히 간파해 ‘개구리 뛰기 전술’이라는 역발상 전법을 구사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맥아더 장군(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위대함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변화를 추진했다는 데 있다. 맥아더는 일본군의 약점을 명확히 간파해 ‘개구리 뛰기 전술’이라는 역발상 전법을 구사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태평양전쟁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에서 전투가 치러졌다. 유럽전선을 통째로 들어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놓아보더라도 육지의 크기가 태평양의 절반도 가리지 못한다. 하지만 1942년 더글러스 맥아더가 호주에서 미 극동군 지휘업무를 맡게 됐을 때 이들은 전쟁을 치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전함과 비행기는 고사하고 소총조차 제대로 없었다. 더욱이 맥아더는 전쟁을 초긴축 재정으로 꾸려나가야 했다. 당시 맥아더에게 배달된 물자는 유럽전선에 투입된 물자의 겨우 5%에 불과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맥아더의 탁월한 조직운영 능력과 경영 능력 덕분이었다. 우선 맥아더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일본군의 특징과 약점을 명확히 간파했다. 일본군은 사전에 마련된 계획에 따라 공격할 때는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사고의 경직성 때문에 패배할 경우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매뉴얼을 작성해 놓지 않았다. 따라서 상상하지 못한 위기(패전)가 닥치면 감당하지 못했다. 맥아더는 예상치 못한 전술과 기동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면 일본군이 아무리 막강해도 실수를 거듭하다 자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판단이 태평양전쟁의 양상을 180도 바꿔놓았다.

태평양에서 맥아더는 일명 ‘개구리 뛰기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술은 전선을 연결해서 안전하게 밀고 올라가는 방법이 아니다. 마치 개구리가 점프하듯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만 건너뛰면서 점령하는 전술이다. 강력한 방어 태세를 갖춘 일본군 거점을 우회해 배후지역 섬에 병력을 상륙시켜 적의 보급선을 차단해 일본군을 무력화하는 전법이었다.

언뜻 생각하기엔 별것 아닌 듯한 발상 같지만 이 전법은 막상 전쟁터에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육지에서 펼쳐지는 전투라면 퇴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섬에 고립되면 전 부대원이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1942년 당시만 해도 해군과 공군 전력에서 일본군은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다. 오죽하면 미군 주력 전투기종 중 하나의 별명이 ‘날아다니는 관’이었을까. 일본군은 드넓은 태평양을 미군이 탈환하려다가 감당 못할 만큼 큰 희생을 치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예상은 뉴기니전선에서부터 깨졌다. 일본군은 미군이 호주 방어를 위해 열심히 참호와 땅굴을 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미군은 뉴기니에서부터 반격해 나왔다. 미군의 반격에 대응해 일본군은 솔로몬 제도의 섬들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일본군의 예상처럼 전선을 형성하고 밀고 올라오지 않았다. 일본군이 뉴기니를 침공하면서 최고의 요충으로 간주했던 곳이 뉴기니 바로 위쪽 뉴브리튼 섬에 위치한 라바울이었다. 일본군 10만 명이 눈을 부라리며 결전을 기다렸다. 그러나 미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미군은 라바울을 건너뛰어 위쪽의 부건빌 섬을 쳤다.

태평양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미군은 87차례의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그중 상당수는 적군의 주의를 돌리는 기만작전이었다. 맥아더는 기습적인 상륙과 공수낙하, 전선을 무시한 침투, 왼쪽을 찌르고 오른쪽을 치는 양동작전을 역사상 그 어떤 지휘관보다도 신속하고 유연하게 해치웠다.

일본군은 미군의 의도를 몰라 허둥대고 엉뚱한 곳에 병력을 분산했다. 그 사이에 일본군의 보급로와 교통로는 단절됐다. 공격도 후퇴도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전술도, 위기상황 대처법을 적어 놓은 매뉴얼도 없었던 일본군은 ‘돌격’이라는 정신적 흥분상태로 대처했다. 항전은 처절하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군 사망자 대비 일본군 사망자의 비율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결국 맥아더는 태평양전쟁을 최소의 비용, 최소의 희생으로 최단시간에 끝내는 업적을 이뤄냈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군 전체 희생자 수는 유럽 벌지 전투 한 곳에서 발생한 연합군 희생자 수에 불과했다.

개구리 뛰기 전술이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창의적 시도가 뒷받침됐다. 섬에서 싸웠던 해병대와 육군 병사들은 유럽전선에서도 유례가 없던 혈전을 벌였고 80여 차례의 상륙작전을 시도했다. 공군 조종사들은 느리고 둔한 전투기 와일드캣으로 일본의 날렵한 제로센을 이겨내는 전술을 개발했다. 해군은 수많은 군함이 침몰되면서도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찾아냈다. 이런 세부적 방법들은 맥아더 혼자서 고안해낸 게 아니었다. 맥아더가 놀라운 용기와 판단력으로 도전을 시작하자 부하 장성과 병사들이 찾아낸 방법들이었다. 상황이 급변하는 전장에서 지휘관이 세세한 부분까지 지침을 내릴 수 없다. 휘하 장병들을 독려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자질이야말로 지휘관의 진정한 역량이 아닐까.

임용한 경기도문화재 전문위원 yhkmyy@hanmail.net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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