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튜닝 시장은 연간 70조 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지난해 국내에서 자동차 351만 대를 만들어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에 오른 나라. 글로벌 생산비중도 5.7%에 이른다. 하지만 모터스포츠 시장 규모는 2000억 원 정도로 고작 세계 시장의 0.4%에 그친다. 자동차의 ‘파생상품’인 모터스포츠와 튜닝산업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낙후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국 모터스포츠 시장이 여건만 되면 앞으로 10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에는 모터스포츠의 꽃인 포뮬러원(F1)이 전남 영암에서 열려 국내 모터스포츠와 튜닝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많다. 12, 13일(현지 시간)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르망 24시간 자동차경주대회’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 모터스포츠의 과제를 짚어봤다.》
한국, 세계5위 車생산에도 튜닝시장 등 2000억대 불과 10월 전남 영암 F1대회 기점 모
터스포츠 발전 元年 삼아야
○ 르망 24는 유럽인의 축제
‘왜애앵∼∼우웅.’
12일 오후 3시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르망 24 대회에서 참가 차량 56대가 굉음을 울리며 출발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장관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23만8000여 명에 이르는 관중이 몰려드는 이유다.
경기 전날인 11일부터 르망 시내는 카퍼레이드와 공연 등이 열려 축제 분위기였다. 경기장 바로 옆의 작은 공항엔 VIP들이 타고 온 크고 작은 비행기 50여 대가 있었으며 계속해서 비행기가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소비성향이 높은 부자가 많이 찾는 이벤트라는 의미다.
파리에서 200km 떨어져 있고, 인구 10만여 명에 불과한 조용한 소도시 르망이 이날만큼은 프랑스의 중심이 된 것 같았다. 르망은 이틀 번 것으로 1년을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했다. 사람들은 자국 국기나 팀의 깃발을 들고 다녔고 서너 살 어린이부터 70, 80대 노인까지 함께 어울렸다. 또 관중이 타고 온 희귀한 올드 카와 내로라하는 고급 스포츠카가 즐비해 마치 모터쇼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음식점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숙박업소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동났다. 숙박료는 2∼5배 치솟았다. 기자가 묵었던 숙소도 평소에는 40유로(약 6만 원)이지만 대회기간에는 110유로를 받았다. 경기가 열리는 이틀 동안 관중과 대회 관계자들이 쓰고 간 돈만 수백억 원에 이른다. 르망 24 경기 한 차례에 스폰서, 팀운영비, 중계권료 등으로 모두 1조 원 이상이 움직인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선 한국에서 유일하게 참가한 한국타이어-판바허팀이 페라리 ‘F430’ 경주차로 LMGT2(양산 스포츠카 부문) 클래스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BMW, 시보레, 재규어 등 자동차회사에서 직접 지원하는 팀을 모두 제쳤으며 타이어도 세계 최고 수준인 미쉐린타이어와 대등한 성능을 보여 대회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전체 참가 차량 중 80%가 미쉐린을 사용했으며 한국타이어는 이 팀이 유일했다. 한국타이어는 이번 대회 참가에 10억여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호주 멜버른 시는 1996∼2005년 F1 그랑프리를 10년 동안 개최하면서 12억 달러(약 1조464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F1 개최 첫해에는 9560만 달러의 효과가 있었지만 2005년에는 1억3070만 달러로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2억 달러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2005년 한 해에만 일자리 3650개가 생겼으며 10년간 2만8000개가 만들어졌다. 2005년 F1 관람을 위해 5만5000여 명이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 주를 찾아와 1인당 평균 938달러를 썼다. 관광객 지출비용으로는 최상위 클래스에 속한다. ○ F1, 한해 27조원 시장 창출… 친환경 기술 경연도
2004년부터 F1 경기를 열고 있는 바레인은 최근 집계 결과 F1을 통해 얻은 직접 수익이 10억74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국가홍보, 관광산업 활성화로 간접 수익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 바레인은 매년 관중을 4만여 명 유치하고 있으며
F1 이외에도 F3, GT, 드래그 레이싱 등 각종 자동차 경주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입장료, 방송중계료, 광고수입 등을 얻고
있다.
중국 상하이도 최근 F1 유치를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년 1억5000만 달러 이상에 이른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상하이는 F1 입장권 판매로만 한 해 3000만 달러, TV광고 및 중계권료 등으로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F1 코리아그랑프리 운영법인인 KAVO의 김재호 부장은 “F1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모터스포츠는 물론이고
서비스, 물류, 자동차 등 연관 산업에 기대 이상의 효과가 발생한다”며 “F1 코리아그랑프리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그 혜택은
풍성하고 고르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래 위한 투자 빨리 시작해야
세계 모터스포츠 관련
시장은 미국이 21조 원 규모로 가장 크다. 이어 독일 5조9000억 원, 이탈리아 4조 원, 프랑스 2조9000억 원, 일본
2조 원 등이다. 일본만 해도 한국의 10배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한 해 동안 19개국에서 열리는 F1은 총
27조 원을 창출하는 거대 시장이다. F1은 연간 400만 명의 관중과 6억 명의 방송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생중계나
녹화중계를 하는 국가는 184개국에 이르고 이들 국가의 연간 총 F1 방송시간은 평균 162시간에 달한다. 독일은 연간
634시간이나 방송했다. 디지털TV 도입 등으로 미디어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 한국도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도 모터스포츠의 활성화는
필요한 상황이다.
모터스포츠 발전은 자동차 친환경 기술 개발과도 직결된다. 이번 르망24의 경우 아우디와 푸조의
친환경 디젤엔진 기술 경쟁이 가장 볼거리였다. 친환경 디젤엔진을 넣은 두 회사의 경주차는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여 지난해는 푸조가,
올해는 아우디가 우승했다. 앞으로는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전기차 등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경주차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CJ에서 모터스포츠 마케팅을 담당하는 김동빈 과장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를 넘는
국가에서 모터스포츠는 인기종목”이라며 “모터스포츠가 단번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르망=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Q] 르망 24시간 자동차경주대회
1923년 시작돼 올해로 78회를 맞이했으며 매년 6월 둘째 주에 열린다. F1과 함께 모터스포츠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경기는 24시간 동안 드라이버 3명이 교대로 운전해 13.629km의 서킷을 가장 많이 달린 차가 우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주차의 출력 등 규정에 따라 모두 4개의 클래스가 있으며 보통 50∼60대가 출전하는데 완주율은 50%에 불과할 정도로 차와 사람 모두에게 가혹한 경주다. “車 강국 코리아, 모터스포츠 후진국 이해 안돼”
한국타이어-판바허팀 2위 이끈 팀매니저 괴벨 씨
“자동차를 잘 만드는 한국이 왜 모터스포츠는 발전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한국타이어-판바허팀을 2위로 이끈 피터 괴벨 팀매니저(사진)는 “자동차의 기술수준이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려면 반드시 레이싱이 필요하다”며 “모터스포츠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자동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스피드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모터스포츠는 급하면 안 되고 반드시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박지성 선수나 김연아 선수처럼 스타플레이어가 생기는 것도 모터스포츠를 흥행시키기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의 스타플레이어 역시 4, 5세 때부터 카트를 타면서 감각을 익히고 15년 이상 다양한 경기에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경험해야 독일의 미하엘 슈마허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탄생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역시 시간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괴벨 매니저는 “모터스포츠가 성장하려면 계기도 필요한데 이번 F1 한국 개최가 바로 그 기회로 본다”며 “정부와 기업 민간 부문이 함께 노력해야 F1의 흥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르망24 경기에 사용한 한국타이어의 성능에 대해 그는 “미쉐린이나 던롭 등 경쟁한 다른 타이어와 비교할 때 전혀 뒤지지 않는다”며 “24시간 경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타이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구성과 조향성능도 훌륭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팀의 레이싱카는 24시간 동안 약 4600km를 달리면서 미쉐린타이어를 쓰는 경쟁팀과 마찬가지로 12번 정도 타이어를 교체했으며 평균 속도도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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