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3일 당초 예고한 대로 ‘자본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을 발표했다. 다음 날 열린 자본시장은 정부의 방안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각각 3000억 원, 2000억 원 이상 국내 유가증권을 순매수했고 원-달러 환율은 23원 이상 떨어졌다. 내용이 이미 며칠 전부터 시장에 알려졌던 까닭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발표한 방안이 별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정부의 이번 규제는 앞으로 자본유출입 변동성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외국계 은행 지점에 대한 선물환 규제는 낮은 달러화 조달 비용을 무기로 높은 수익을 올리던 이들의 활동 영역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다.
외국계 은행 지점들은 그동안 신규 투자비가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은 소매영업보다 낮은 달러 조달비용과 브랜드를 기반으로 수익성이 높은 도매영업을 해왔다. 그리고 그중 중요한 부분이 국내 수출업체의 환위험 헤지 수요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과정에서 ‘낮은 금리의 달러 조달, 높은 금리의 원화 채권 매수’로 돈을 벌었던 것이다. 특히 이전에는 선물환과 현물환 포지션을 합한 순포지션을 기준으로 규제를 해왔기 때문에 외국계 은행 지점들은 달러 조달만 가능하면 거의 제한 없이 이러한 영업을 늘려 수익을 내왔다.
그런데 13일 정부규제안에 따르면 향후 이러한 영업을 선물환 포지션이 자기자본의 250% 이내인 수준에서만 할 수 있다. 현재 외국계 은행 지점의 선물환 포지션 규모가 전체적으로 자기자본 대비 300%를 넘어서고 일부 은행은 이 비율이 800%를 넘는다.
물론 외국계 은행들은 서울지점에서 영위하던 영업을 홍콩 등 역외로 옮겨 수행할 것이다. 어차피 한국 정부의 규제는 역외 금융기관에 적용되지 못한다. 또 자본을 늘려 대응할 수도 있다. 자본금 규모가 작은 은행들은 소규모 자본 확충만으로도 비율을 낮출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의도한 만큼 달러 자금 유입 억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역외 금융기관들도 포지션 헤지를 위해 국내 금융기관과 거래를 해야 한다고 보면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적어도 이 과정에서 실물 거래 헤지 이외의 투기적 거래가 줄어든다면 이것만으로도 정부의 계획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외환시장에 대한 규제는 자본시장 개방화에 대한 역행으로 비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정책이다. 정부도 발표 자료에서 이번 규제가 개방화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그런 인식이 들더라도 자본유출입 변동을 완화한다면 실보다 득이 더 많다고 판단된다. 시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당연히 보완해 가야겠지만 큰 틀에 있어서는 일관된 정책적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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