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와 전쟁소설을 좋아하던 여진수 씨(27)는 소년 시절부터 만화 주인공 ‘김 박사’를 꿈꿨다. 각종 첨단 무기를 만드는 만화 속 연구원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방위산업체 LIG넥스원의 연구개발본부 지휘통제연구센터 1팀.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록히드마틴사에서 들여온 로켓을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 특성에 맞게 국산화하는 연구를 하는 부서다.
그는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한다. 지난해 7, 8월 5주 동안 LIG넥스원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우수한 평가를 받아 9월 입사를 확정지었다. 올해 1월에는 정식 연구원으로 입사해 그토록 바라던 ‘김 박사’가 되는 길에 바짝 다가서게 됐다.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IG넥스원 본사에서 만난 여 씨는 “인턴 활동을 통해 어릴 적부터 바라던 방산업체 연구원이 될 수 있었다”며 “인턴 기간에 적극적으로 배우려 했던 게 좋은 평가를 받아 입사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 저절로 다가오는 기회는 없다
경북 포항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여 씨는 지난해 7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의 한 고시원으로 이사를 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LIG넥스원 연구본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턴 합격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짐을 싸 수원으로 왔다. 여 씨는 “2009년 6월 학교 취업캠프에 갔다가 LIG넥스원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평소 가고 싶던 회사라 그날부터 이틀 동안 도서관에서 자기소개서만 썼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이사까지 해가며 인턴을 하기로 했다”며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방산업체 입사를 목표로 세운 것은 군대에서 제대해 학교에 복학하던 2006년 9월이었다. 그 뒤 캠퍼스 리크루팅이나 취업특강 등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방산업체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밀리터리 리뷰’라는 잡지도 구독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대학 3학년이 되던 2007년에는 가고 싶은 회사도 정했다. 그는 “각 방산업체가 고유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전공이 전산공학이다 보니 전자, 통신장비에 강점이 있는 LIG넥스원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인턴 합격 소식 듣자마자 포항 → 수원 주저없이 이사 “기회, 도전하는 자에게 온다”
여 씨는 지난해 9월 입사가 확정된 뒤에는 학교 학생경력지원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인턴에 지원할 때는 자기소개서도 입사시험이라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쓰고 취업특강과 캠퍼스 리크루팅에도 빠지지 말고 참여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기회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며 “스스로 기회를 찾고 도전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인턴, 퍼즐을 맞추는 시간
적극성은 인턴 활동 기간에도 필요했다. 그가 인턴을 하며 맡은 연구는 ‘트랙의 안전 비행경로 확인 모듈 구현’에 대한 프로젝트. 미사일이나 포탄이 날아가는 경로를 파악한 뒤 포탄이 경로를 이탈해 주변 건물 등에 위협을 줄 경우 방향을 조절하거나 스스로 폭발하게 만드는 기술에 응용된다. 처음 접하는 일이었고 혼자 힘으론 벅찼다.
여 씨는 “낮에는 혼자 연구하고 업무가 끝난 시간에는 조금 한가해진 선배들을 붙잡고 늘어졌다”며 “그때마다 선배 연구원들은 노하우와 방향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중에는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연구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구가 속도를 내자 접하는 것도 많아졌다. 평소 가격이 비싸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운영 프로그램이나 개발 프로그램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종합적인 관점을 키웠다. 여 씨는 “데이터베이스나 운영체제(OS)와 관련된 과목을 학교에서 따로따로 배웠다면 인턴 기간에는 이런 것들을 통합해 활용하며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퍼즐 조각을 만들었다면 인턴 활동을 통해 이 퍼즐을 끼워 맞춰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김 박사의 꿈, 한국산 무기를 수출하는 그날까지
여 씨는 2007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해외로 나가 소중한 경험을 했다. 교내 ‘이스라엘 지역학 동아리’와 함께 이스라엘 하이파 지역으로 향했다. 동아리에서 만든 ‘이스라엘의 산업과 산업동향 및 대학연구’라는 프로젝트로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아 겨울방학 기간 ‘하이파 테크니온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 그는 그곳에 머물며 틈틈이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을 찾았다. 라파엘이 어떤 무기를 만들고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아보며 그는 ‘방위산업이라는 커다란 시장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인턴을 통해 이룬 여 씨는 현대전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한다. 정밀하고 신속한 타격으로 전쟁을 속전속결로 마무리하고 인명 피해도 줄일 방위력은 무기운용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여 씨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전쟁억지력을 높이고 자주국방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 무기와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고자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는 그는 “자신들의 무기에 엄청난 자존심을 갖고 있다고 소문난 이스라엘에 한국산 무기를 수출하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인사 담당자가 말하는 인턴십 ▽좋은 예-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줘야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면 규모가 크건 작건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따라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정식직원처럼 회사에 소속감이 생기고 활동에 동참하며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이에 더해 인턴 기간에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회사에 활력까지 불어넣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나쁜 예-인턴은 스펙 쌓는 도구가 아냐
인턴은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 인턴을 하는 경우 책임감 없이 대충 시간만 때우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스펙을 얻기 위해 인턴을 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회사와 업무에 대해 배우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인턴활동 기간에는 팀원이나 다른 인턴들과 활발히 어울리며 조직에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LIG넥스원, 여름방학기간 인턴십 프로그램 운영
LIG넥스원은 여름방학 기간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 분야 중심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수한 R&D 자질을 가진 대학생을 선발해 실무능력을 키우고 회사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인턴십 프로그램의 목표다.
이 회사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게 될 잠재력 있는 인재들에게 회사생활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진로 선택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치고 신입사원 공채에 다시 지원한 학생들도 있었다”며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턴 수료자들이 LIG넥스원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할 경우 서류전형은 면제된다. 인턴 기간에 우수한 평가를 받을 경우에는 공채 전형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지난해에는 11명의 인턴 중 활동기간에 좋은 평가를 받은 4명을 별도의 전형 없이 정식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2009년 8월 인턴기간이 끝난 뒤 9월 최종 합격 통보를 했다”며 “올 1월 입사 때까지 앞으로 맡게 될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여유를 갖고 입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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