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인간에게 많은 심리적 의미를 준다. 민족마다 행운의 숫자가 있고 각종 사회현상이나 개인적인 인생사도 숫자로 풀어나가고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가령 6·25전쟁 발발 59주년과 60주년은 비록 한 해 차이지만 사람들은 60주년에 뭔가 색다른 감회를 느낀다. 또 10년 단위로 묶어 세대로 정의하고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도 100년 단위 혹은 1000년 단위로 나누면서 마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현상이라도 숫자로 표현하면 공연히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여론조사로 95±3%포인트 범위 내 오차라고 하면 결과물인 숫자를 틀릴 수 없는 진실처럼 받아들인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종합주가지수를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종합지수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한다. 사실 따져보면 종합지수는 인위적인 가공물일 뿐이다. 1980년 1월 4일을 100으로 놓자는 하나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조차 시가총액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개별 종목에 관한 정보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종합지수는 겨우 60% 상승했지만 구성 종목의 상승률은 천양지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종합지수를 놓고 투자를 결정한다. 1,700을 넘어서면 팔아야 할 것 같고 1,600 밑으로 하락하면 사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9개월 전과 지금의 1,700은 다르다. 그때 1,700에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지수의 70∼80%를 차지했다면 지금의 1,700에는 경기회복의 결과물로 나타난 기업의 이익과 그 사이 변화한 글로벌 경제지표와 정치적 변동이 포함돼 있다. 또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의 경제전망에 대한 예측이 이미 반영되기 시작한 지수다.
지수는 머무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경제와 기업동향이 녹아들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판단이 누적되면서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같은 지수라도 어제의 1,700과 오늘의 1,700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논리가 개별 종목의 주가에도 적용된다. 작년 9월 80만 원을 넘었던 삼성전자와 최근 80만 원을 넘었을 때 삼성전자는 당연히 같은 가치의 회사가 아니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이익이 그만큼 더 쌓였고 브랜드 인지도도 더 올랐다. 동시에 스마트폰 전쟁으로 대변되는 치열한 경쟁과 불확실성이 반영되기 시작하는 80만 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숫자 자체에 집착해 주가만 보면서 기계적 매매를 한다. 본질적 가치를 보지 않고 종합지수나 주가만 보는 매매는 상대방 선수를 보지 않고 축구공만 쳐다보는 선수와 같다. 시장이 확실한 방향성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가치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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