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리포트]우리금융과 이팔성회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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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우리’를 인수한다고요? ‘우리’가 품을 겁니다
부실덩어리 살려내 금융위기 고속탈출 모범생 됐는데…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사진)을 두고 한때 ‘불운의 최고경영자(CEO)’라고 했다. 2004년 9월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끝으로 그룹을 떠난 지 4년여 만인 2008년 6월 그룹 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그를 기다린 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였다. 취임 일성이었던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30위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은 일순간 허황된 꿈이 되는 듯했다. ‘뼈저린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혁신’ 같은 말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미운 오리서 백조 변신
해외銀 인수-사모펀드-부동산 투자
금융위기 와중에도 성장기반 다져


그러나 지난해 10월 초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열렸던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이 회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선 금융회사 CEO의 초조한 표정이 아니었다. 3분기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진 덕분이라고 한 측근은 귀띔했다. 우리금융의 작년 3분기 순이익은 4838억 원으로 KB, 신한, 하나 등을 포함한 국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단연 최대였다. 이스탄불로 오기 한 달 전에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66층짜리 AIG그룹 빌딩을 계열사를 통해 사들였다고 했다.

그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요즘, 이 회장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물론 금융위기 직후의 초조함이나 불안감과는 다르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비장함이 묻어난다.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안 때문이다. 많은 금융전문가는 민영화 방안이 나온 뒤 은행 간 인수합병(M&A)을 통한 ‘금융 빅뱅’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을 품에 안으려는 다른 금융지주사의 러브콜도 쇄도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당당하게 말한다. “합병을 하더라도 우리금융이 품에 안기는 게 아니라 안는 것”이라고. 우리금융이 몸집은 물론이고 체질까지 우량회사로 바뀐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 부실 덩어리를 우량 체질로 탈바꿈시켜

우리금융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실화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1999년 한빛은행으로 통합한 뒤 2001년 평화은행과 광주은행, 경남은행까지 묶어 금융지주회사로 출발했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라는 수식어를 달긴 했지만 12조8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부실 덩어리였다.

지주회사 출범 10년째인 지금의 우리금융은 ‘미운 오리새끼’에서 ‘화려한 백조’로 재탄생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투입한 공적자금 가운데 약 40%인 5조2000억 원을 회수했다. 현재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이 약 12조9400억 원이고 정부가 우리금융의 지분 56.97%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추후 지분 매각을 통해 투자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은행업에 치중된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달리 증권 카드 자산운용 등 사업 다각화가 비교적 잘돼 있어 합병 파트너가 되겠다며 나서는 금융지주회사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우리금융의 환골탈태는 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임직원의 노력, 그리고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 우리금융의 경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전인 2008년 8월 1일부터 전 계열사에 일일 모니터링 보고체계를 가동시켰다. 경영의 방점을 위기관리에 찍은 것이다. 이어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국제금융위기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2009년 1월에는 금융권 최초로 지주회사 차원의 비상대책상황실을 가동했다.

고강도 긴축경영도 실시했다. 금융위기 직후 계열사 임원 급여를 10%씩 반납했고 지난해에도 임원 급여 10%를 추가 반납했다. 2008년 4분기 예산의 10%를 절감했고 지난해에도 변동성 경비의 20%를 깎았다.

우리금융의 실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순이익이 4545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지난해에는 1조260억 원으로 회복하며 가장 빨리 금융위기의 후유증을 털어낸 금융회사로 평가받았다.

올해초 ‘One Do’ 경영 선포
초우량 금융사 도약 줄달음


○ 체질 개선과 함께 성장기반 구축

사실 위기관리와 긴축경영은 우리금융만의 특수한 사례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금융에는 ‘플러스알파’가 있다.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성장 기반을 착실히 확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해외은행 인수를 검토해오다 올해 5월 미국 최대 교포은행인 로스앤젤레스 한미은행을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동부의 우리아메리카은행과 함께 서부 지역에서도 금융 네트워크를 확보한 것이다.

맨해튼에서도 금싸라기로 꼽히는 AIG그룹 본사 빌딩을 사들인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명성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과 국민연금을 파트너로 끌어들여 60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만들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M&A 시장에 저가 매물이 나오자 ‘지금이 매수 타이밍’이라는 말이 무성했지만 우리금융처럼 실천에 옮긴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금융계에서 ‘이팔성의 힘’이라는 표현이 회자되는 이유다.

이 회장은 금융위기 이후의 경영 해법으로 올해 초 ‘원 두(One Do)’를 제시했다. ‘원 두’란 그룹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창의적 사고와 실천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결집해 그룹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해 가자는 의미다. 전통적 의미의 비용절감이 아닌 조직 인력 업무프로세스 등 모든 측면에서 낭비 요소를 제거하고, 임직원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까지 바꿔 어떤 위기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저비용 고효율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매월 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경영협의회와 매주 열리는 지주회사 월요회의에서 회장이 직접 ‘원 두’ 경영 추진현황과 실적을 챙기고 있다”며 “부실을 털어낸 데서 안주하지 않고 초우량 금융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회장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他금융지주사와 ‘주식교환 합병’ 유력

■ 6월중 나올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은


민영화는 우리금융그룹의 숙원이자 미래를 좌우할 핵심 현안이다. 이팔성 회장은 취임 때 전략적 해외진출, 비용 절감과 함께 민영화 및 대형화를 3대 실천 목표로 제시했으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려 있다.

정부는 우리금융에 모두 12조8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친 시간외 대량매매(블록세일) 방식으로 5조2000억 원을 회수해 지분을 56.97%까지 낮춰왔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이 56.97%의 지분을 앞으로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민영화 방안을 이달 중 내놓을 계획이다.

민영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우리금융을 다른 금융지주회사에 인수시키는 완전 민영화다. 그러나 이 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지주회사가 다른 지주회사를 인수하려면 지분 100%를 인수해야 한다.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인 약 12조9400억 원에 이르는 현금을 동원할 금융지주회사는 국내에 없다. 43%에 이르는 소수 지분을 전량 사들이는 것도 어렵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과 다른 금융지주회사 간 주식 교환을 통해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합병 자체가 민영화는 아니지만 정부의 지분이 희석되는 탓에 추후 지분 매각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

합병이 여의치 않다면 정부의 지분을 잘게 쪼개서 파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특정 대주주가 아닌 과점적 주주그룹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측은 민영화 일정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국유(國有) 금융회사’ 체제에서는 매년 예금보험공사와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경영 자율성이 떨어진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MOU 상황에서는 각종 감사와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양팔과 양다리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차고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족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릴 정도로 맨파워가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금융지주회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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