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4시경 광주 서구의 S건설 사무실. 3월 말 최종 부도 처리된 이 업체는 광주 지역에서 1, 2위를 다투던 전문건설업체다.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몇 차례 문을 두드리자 한 직원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왔다.
사무실에서는 두 명의 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불을 꺼놓아 낮인데도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한 직원은 “회사는 망하고 갈 곳도 없어 사무실에 나왔다”며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모 씨(38)는 “직원이 30명 정도였지만 올 2월부터 월급을 못 받았다”며 “회사를 살리겠다고 집도 담보로 잡혔는데 지금은 가압류가 들어온 상태”라고 말했다. 광주지역에 기반을 둔 원청업체인 남양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S건설은 공사대금 등을 받지 못해 부도가 났다. 이 회사에 합판 목재 장비 등을 납품하던 40∼50개 업체들도 회사당 많게는 2억∼3억 원, 적은 곳은 2000만∼3000만 원의 대금을 떼였다고 한다.
○ 산업기반 부실한데 건설업까지 위기
광주·전남은 이 지역 상위 5위권 가운데 금호산업 남양건설 대주건설 금광기업 등 4개 건설업체가 지난해부터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 건설사들의 부도는 하청업체들의 연쇄 부도로 피해가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광주·전남지역의 어음부도율은 1.11%로 3월(0.31%)에 비해 0.80%포인트 올랐다. 이는 전국 평균(0.15%)의 7배에 이르는 수치다.
현재 광주지역 아파트 공사현장 18곳 중 11곳은 건설업체의 자금난이나 분양 지연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남구에서 280여 채가 들어설 계획이던 H건설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은 주차장 골조공사가 진행되다가 멈춘 채 4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분양시장이 안 좋아 몇 차례 분양을 시도하다가 중단됐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분양가를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책정한 데다 입지가 좋지 않아 아직까지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건설사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어음 등을 막지 못해 자금난을 겪고 있다. 추가 부도 가능성이 있는 지역 종합건설사들의 영문 이니셜까지 업계에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남양건설과 금광기업의 법정관리 이후 100여 곳에 이르는 하청업체가 약 500억 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금융권에서 퇴출 결정을 받은 대주건설도 이 지역 1500여 개 업체, 2만여 명의 직원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 ‘사실상 폐업’ 업체 수두룩해
전북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8곳의 종합건설사가 부도를 냈다. 도내 도급순위 1위인 성원건설에 이어 30위인 광진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지역 20위권의 한 건설사도 최근 3곳에서 총 60억 원대의 공사를 진행하다가 얼마 전 부도를 냈다. 업계 관계자는 “이 건설사의 경우 회수되지 않은 금융권 대출까지 더하면 지역경제에 100억 원가량의 피해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북지역 2000여 개 전문건설업체 중 115개사는 사실상 폐업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 한 전문건설업체 대표는 “요즘 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이 없으니 일거리가 없는 업체가 수두룩하다”며 “건설사들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거래했다가 돈을 떼이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관급공사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5월까지 도내 관급 공사 건수는 62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24건)에 비해 감소했다. 공사규모별로 봐도 1억 원 이하의 소규모 공사는 늘었지만 1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 건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충북의 경우 이 지역 종합건설업체 610개 중 300개 이상이 1년 동안 입찰을 따내지 못했다.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 육종각 사무처장은 “각종 관급 공사 입찰에서 3, 4개씩 입찰에 성공하는 업체가 있는 반면 절반이 넘는 업체는 하나도 수주하지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도 지난해보다 발주량이 줄어 허덕이고 있다. 올 5월 말을 기준으로 대전의 지역 업체가 참여하는 공사 수와 발주금액은 151건, 2312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각각 37%, 32% 감소했다.
충남지역의 미분양 아파트는 4월 말 현재 1만2973채로 경기와 대구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많다. 미분양 아파트는 2008년 12월 1만5918채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 추세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신규 공사 자체도 줄고 있다.
광주=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전주=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