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라면-과자 등 7월부터 권장가격 표시 금지제조-유통사 파워게임 예고… 담합땐 소비자 피해
7월부터 아이스크림 라면 빙과 과자 등 4종류의 가공식품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이 없어진다. 1999년부터 시작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 금지제가 식품에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또 243종의 의류 품목에도 권장소비자가격이 폐지된다.
정부는 “제조회사가 권장소비자가격을 실효성 없이 높게 설정한 후 대폭 할인해주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을 막겠다”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오픈프라이스’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제조회사와 유통회사 간 ‘파워 게임’이 본격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태풍의 눈’, 아이스크림
권장소비자가격은 1900년대 초반 소규모 유통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선 유통회사 간 경쟁을 제한하려고 1973년 가격표시제와 함께 시행했다. 하지만 권장소비자가격이 소비자 권익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도입됐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확산된 오픈프라이스는 한국 시장에선 1999년부터 TV 등 가전과 정장 등 일부 품목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다음 달 오픈프라이스 확대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품목은 아이스크림이다. 그동안 많은 동네 슈퍼들이 연중 반값 할인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 때문이다. 본사로부터 일정 수준의 매출을 요구받는 국내 빙과회사의 영업소들이 월말이나 분기 말 제품을 동네 슈퍼에 헐값으로 ‘밀어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국내 법규상 유통기한 표시를 생략할 수 있어 제조일로부터 몇 달 지난 재고 제품도 버젓이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네 슈퍼들은 권장소비자가격이 700원인 빙그레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350원에 팔아왔다. 상인들은 “반값에 팔고도 15% 정도 이익을 남겼다”고 털어놨다. 메로나는 이마트에선 개당 490원, 10개 골라 담을 때는 개당 380원꼴이었다. 오픈프라이스가 시행되면 ‘무늬만’ 700원짜리인 아이스크림 가격은 300원대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아이스크림은 동네 슈퍼와 대형마트의 매출 비중이 8 대 2로 동네 슈퍼의 구매 파워가 컸지만, 오픈프라이스 실시 이후엔 가격 협상력이 있는 대형마트의 파워만 커져 가뜩이나 힘든 영세 상인이 피해볼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제조회사와 유통회사 간 힘겨루기
식품과 유통업계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장중호 이마트 상무는 “지금까지 제조회사들이 가격을 통제하려 들어 소비자들이 손해를 본 측면이 있다”며 “오픈프라이스로 불합리한 유통 구조가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빙그레 측은 “대형마트가 무턱대고 가격을 내리라고 제조회사를 압박하면 장기적으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만약 ‘빅3’ 대형마트들이 가격담합을 하면 오픈프라이스는 소비자에게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며 “대형마트 판매 제품의 단위가격 표시제를 확대하고, 위반할 경우 벌칙을 강화해 소비자들의 가격 비교가 더 쉽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Q] 오픈프라이스 제도
최종 판매업자가 제품 가격을 결정해 파는 제도. 정가가 없기 때문에 얼마에 팔든 판매점의 자유의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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