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증권사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펀드고객에게 랩어카운트(자산관리계좌)를 권유했지만 요즘은 소문을 듣고 지점을 찾아와 가입하는 ‘워크 인’ 고객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 서울 개포지점 윤기수 지점장의 말이다. 최근 투자자문사가 찍어주는 ‘되는 종목’ 몇 개에 집중 투자하는 랩어카운트 상품이 각광받으면서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랩어카운트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 ‘공모펀드 비켜라’
29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28일까지 국내외 주식형펀드에서는 10조3500억 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반면에 랩어카운트에는 4월 말까지 7조3998억 원이 몰려들었다. 1월에 1478억 원이 늘어난 랩어카운트는 2월 4833억 원, 3월 1조3261억 원, 4월 5조4424억 원으로 유입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5, 6월 증가분까지 합하면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투협 관계자는 “줄어든 펀드의 계좌수가 신설된 랩어카운트 계좌수보다 훨씬 많지만 거액을 투자하는 랩의 특성상 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이 랩으로 옮겨갔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주도하는 랩어카운트 시장은 11월부터 은행으로 확대돼 더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금까지는 투자자문사가 주로 맡던 자문영역에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까지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삼성증권을 통해 삼성SMA한국밸류를, 우리투자증권을 통해서는 한국밸류플러스 등의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증권을 통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자문형 랩 자문을 맡는다. KTB자산운용, ING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도 랩 자문을 검토하고 있다.
○ 주가 갑자기 하락땐 큰 손해날수도
랩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은 펀드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고수익 상품을 원했고 증권사들도 마케팅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2,000을 오르내릴 때 돈을 맡긴 투자자들 중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아직도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조인강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과거에는 랩어카운트 상품에 1억 원 이상 투자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최소 투자단위가 500만 원인 상품도 생겼다”며 “맞춤형 투자에 대한 수요와 증권사의 마케팅이 맞물려 랩어카운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어서 가입 및 운용방법에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한 펀드에서는 한 종목을 10% 이상 보유하지 못하고 한 운용사는 운용 펀드를 모두 합쳐 한 종목을 20% 이상 보유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모펀드에는 통상 80∼100개의 종목이 편입돼 있다. 하지만 랩어카운트는 이런 규정이 없어 수익성이 높아 보이는 5∼10개 종목에 집중 투자한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큰 수익이 나지만 갑자기 하락하면 큰 손해를 보기 쉬운 운용방식인 셈이다.
공모펀드의 판매수수료가 2013년부터 1.0% 이하로 낮아질 예정이라 수수료 수입 확보를 위해 증권사에서 무리하게 판매에 나선다는 비판도 있다. 랩어카운트 상품은 일임보수, 성과보수, 매매수수료 등으로 보수가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펀드 대신 랩의 마케팅을 강화하는 측면도 크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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