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이거 큰일 났습니다. 최근 집 근처 간선도로 진입로가 공사를 마쳐 남쪽으로 가려면 ‘좌측 방향’을 타도록 길이 바뀌었거든요. 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지난 주말 아무 생각 없이 우측 방향을 탔습니다. 결국 1km 넘게 빙 돌아와 다시 ‘좌측 방향’으로 진입해야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내비게이션의 안내만 따랐기 때문이었죠.
1년 전 이맘 땐 미국에서 혼자 차를 렌트해 필라델피아의 친척을 찾아갔습니다. 물론 지도를 펴고 길을 연구하는 대신 내비게이션만 믿었죠. 오후 7시경 어둑어둑해질 때 필라델피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사 중’ 표지판이 나타났고, 어쩔 수 없이 우회전을 해 골목으로 접어들었죠. 내비게이션은 새 경로를 알려줬습니다. 이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집들은 하나같이 낡았고, 거리에 주차된 차들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슨 차 투성이였습니다. 필라델피아 교외의 우범지역이었던 겁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도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은 도시입니다. 무사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날 만난 친척은 “그래서 내가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는 것”이라며 저를 한심하게 보더군요.
전 내비게이션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길눈이 어둡거든요.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쓰다보니 길눈이 더 어두워지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물론 저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5월 말 미국에선 로렌 로젠버그라는 여성이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블랙베리로 내려받은 구글 지도 서비스의 ‘보행경로’만 보고 4차로 자동차전용도로를 횡단하다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죠. 이 여성은 “구글의 잘못된 경로안내 탓에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인터넷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섈로(the Shallows)’라는 책이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니컬러스 카는 기술에 대한 우리의 의존이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런던의 택시운전사를 조사했더니 복잡한 런던 골목을 누비는 택시운전사는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일반인보다 훨씬 컸다는 거죠. 해마는 공간지각능력을 관장하는 부위입니다. 문제는 해마는 쓰지 않으면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에 의존할수록 해마 크기가 줄어든다는 겁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의대 정신과의 베로니크 보보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점점 해마의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20년 내로 치매가 점점 어린 나이에 발병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일까지야 생기겠나 싶지만, 지나치게 기억하지 않는 습관은 걱정이 됩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것, 지식을 기억하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그때그때 검색하는 것, 길을 외우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것 등등. 그래서 적어도 주말만이라도 스마트폰을 꺼두고, 내비게이션 대신 지도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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