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납량특집이 나온다. 극장가에는 공포영화가 한두 편 걸리기 마련이고 TV에서는 ‘전설의 고향’이 시작된다. 무서운 장면에 눈을 감으면서도 사람들의 공포물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전율 속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단조로운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이다. 그런데 최근 증시에도 납량특집이 등장했다. 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의 ‘제3의 대공황론’이다.
말인즉슨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급격한 긴축정책이나 섣부른 금리인상은 1930년대 대공황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제회복이 첩첩산중이기 때문에 경기회복의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현행 정책을 유지하지 않으면 제3의 대공황이 온다는 경고다.
이에 동조하는 경제학자가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 파이낸셜타임스(FT)의 이코노미스트인 마틴 울프도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지속해야 하며 아직 출구전략을 펼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심지어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쪽이다. 비관론자의 대표선수인 누리엘 루비니 교수 역시 이번 불황은 깊고 장기간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구나 중국마저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 글로벌 경제는 사면초가다.
반면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필두로 일단의 전문가들은 잠시의 조정을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한다. 정책의 효과는 시차가 있는 법이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근간이 흔들린 사건이 있은 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아 여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경제는 예정대로(?) 가고 있으니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논지다.
혹자는 ‘경제학자란 불황이 세 번 오면 예측은 여덟 번 한다’고 농담한다. 그러나 다섯 번의 틀린 예측 때문에 불황이 세 번밖에 오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가 준비하도록 경고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이익에도 증시는 비실거린다. 경기회복이 위장된 회복일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 그럴 만한 이유는 도처에 있다. 유럽 재정적자에 이어 미국 지방정부의 파산설이 등장한다. 실업률은 여전하고 소비회복세도 더디다. 불안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시장은 의심이 강할 때 상승장을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없다면 납량특집의 재미는 반감한다. 시장도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가 없다면 대세 상승장을 만들어 나갈 강인한 체력을 키울 수 없다. 정책당국도 1930년대 대공황의 전철을 밟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고 믿고 싶다. 어차피 올해는 조정장의 연속이다. 흑백논리보다는 균형적인 냉정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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