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아나는 독일, EU 구원투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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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 나홀로 성장 쑥쑥

올해 경제성장률 1.4% 예상
다른 EU國보다 빠르게 회복

■ 수출이 효자

1분기 57조원 깜짝흑자 기록
폴크스바겐, 작년比 18% 늘어

지난달 말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 인근 도로에서 개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베를린 곳곳에선 정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공공시설 관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정혜진 기자
지난달 말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 인근 도로에서 개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베를린 곳곳에선 정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공공시설 관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정혜진 기자
지난달 30일 독일 남동부 드레스덴에 있는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의 공장에서는 최고급 모델 ‘페이튼’의 생산 라인이 풀가동 중이었다. 작업 공정에 맞춰 서서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나무 작업 벨트 위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엔지니어들의 섬세한 손길은 멈출 새가 없었다.

전체 공정의 90% 이상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고급차 페이튼은 이 투명 공장에서만 생산되며 하루 생산량은 24대 정도. 크리스틴 하케 대변인은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생산돼 이 차들은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이라며 “이 중 대부분은 해외로 수출되며 한국은 중국, 독일에 이어 3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 유럽에서 홀로 독주하는 독일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인 ―4.9%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였던 독일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독일 경제는 올해 1.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2분기 유럽 주요국 중 처음으로 GDP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던 독일은 올 1분기에는 0.2%의 성장률을 나타내며 프랑스(0.1%)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빠른 회복의 추진력은 수출이다. 올 1분기 독일은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한 1972억 유로(약 301조7160억 원)를 수출하며 374억 유로(약 57조2220억 원)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여전히 144억 유로(약 22조320억 원)의 적자를 나타낸 프랑스, 249억 유로(약 38조970억 원)의 적자를 본 영국 등과 비교해볼 때 월등한 성적이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의 경우 올 5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294만 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8.1% 증가했는데 특히 신흥 시장에서의 성적이 돋보였다. 중국 시장에선 이 기간 77만780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48.2%가 늘었고 한국 시장에서는 올 상반기 476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2.8%가 증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강유덕 유럽팀 부연구위원은 “전통적으로 상품 교역 부문에서 독보적인 수출경쟁력을 지니는 독일은 올 들어 세계 각국의 경기 부양책, 유로화 약세로 상품 교역량이 늘어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 “실업률 안 높아 위기 체감 못 해”

독일 경제의 회복세를 이끌고 있는 또 다른 축은 공공투자 확대다. 지난해 1월 독일 정부는 500억 유로(약 76조5000억 원)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며 공공투자 확대에 연방정부가 140억 유로(약 21조4200억 원), 지방 정부가 40억 유로(약 6조1200억 원)를 부담해 총 180억 유로(약 27조5400억 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대부분은 유치원, 학교, 대학교의 시설 보수,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시설 투자에 쓰이고 예산의 3분의 1은 병원 등 지역 기반시설의 보수에 투입하기로 했다.

또 독일 정부는 근로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조업단축제도를 실시하는 기업에 대해 보수 삭감액의 60% 이상을 지급해 주는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실업률은 2008년보다 17만 명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제 독일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남유럽 재정위기는 일부의 이야기일 뿐 우리와 상관없다” “위기를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 재정긴축안, 약일까 독일까

문제는 올해부터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7일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인 800억 유로(약 122조400억 원)의 재정 긴축안을 발표했다.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재정의 건전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독일은 이번 남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로존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 유로화를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독일 내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재정적자 ‘3% 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도 경고에 그쳤던 것을 유럽연합(EU)의 의결권 제한 등 실질적 조치로 바꾸기 위해 EU 차원의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은 EU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며 급격한 수출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이 유럽의 경제 회복을 이끌지는 못할망정 대규모 재정 긴축으로 내수를 위축시키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상공회의소(DIHK) 볼커 트레이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성장률이라는 가시적 숫자를 올리기 위해 재정 지출을 계속한다면 ‘제2의 금융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위기를 만들 순 없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데이비드 비어스 전무는 “신용등급과 재정수지가 반비례하는 상황에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이자비용 확대 같은 불이익을 어디까지 감내하면서 재정지출을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국 정부의 결정에 달린 것”이라면서도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미국의 폴 크루그먼 등의 의견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이번 재정긴축안이 유럽 경제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약이 될지, 세계 경제를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으로 이끌 독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드레스덴=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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