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기아자동차 국내 영업본부. 건물 앞에 주차한 중형 세단 K5를 앞에 놓고 스마트폰인 갤럭시S를 켰다. SK텔레콤의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T스토어)에서 미리 내려받은 ‘K5’ 앱을 실행하자 차량진단, 제어, 에코 드라이빙, 카탈로그 등의 메뉴가 늘어선 초기화면이 나타났다. 이 중 제어 서비스로 들어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도어 오픈’과 ‘트렁크 오픈’ 메뉴를 클릭하자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차문과 트렁크가 철거덕 소리를 내면서 바로 열렸다. 이어 초기화면으로 돌아가 진단 서비스를 클릭하자 엔진과 변속기 고장 여부, 배터리 전압, 냉각수 상태 등이 실시간으로 체크돼 휴대전화 화면에 고스란히 떴다.
이번에는 차에 시동을 걸고 주행 중 보조석에서 앱을 실행해 봤다. ‘에코 드라이빙’ 메뉴를 클릭하니 주행 속도와 거리가 하단에 뜨고 속도계 모양의 반원형 그래프에 ‘GOOD’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실시간으로 연료소비효율(연비)을 계산한 뒤 운전자의 경제운전 습관을 평가해 점수화한 것이다.
최근 기아차와 SK텔레콤이 함께 개발한 K5의 차량제어용 스마트폰 앱을 직접 체험해 봤다. 시동이 꺼져 있어도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를 이용해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한 것은 이번이 국내에선 처음이다. 기아차는 16일 출고 차량부터 이 서비스를 적용할 계획이다.
어떤 장치가 스마트폰으로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 궁금해 차문을 열고 안을 샅샅이 살폈다. 육중한 송수신기를 상상했지만 하드웨어는 의외로 단순했다. 기아차 연구진이 운전대 좌측 하단의 OBD 단자(연료시스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정비 모니터를 연결할 수 있는 단자)를 열자 약 5cm 크기의 조그마한 칩이 눈에 들어왔다. ‘모칩(mochip)’으로 불리는 이 작은 칩이 블루투스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준다. 운전자는 모칩을 단자에 꽂고 스마트폰에서 블루투스 장치를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무선 인터넷인 와이파이(Wi-Fi)가 아닌 블루투스로 통신을 하기 때문에 반경 10m 이내에서만 작동하며 시동을 거는 기능이 빠진 것은 아쉬웠다. 이에 대해 기아차 측은 조만간 차체에 와이파이로 스마트폰과 통신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거리상의 제약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K5 앱을 개발한 협력업체 연구원은 “기능 면에선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모바일과 자동차 기술의 융합이 본격화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앱 개발에서 가장 큰 관건은 시동이 완전히 꺼지고 암전류(차량 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만 흐르는 이른바 ‘슬립모드’에서 스마트폰과 통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기존 방법으로는 슬립모드에서 통신 기능까지 모두 두절됐다. 이에 기아차는 슬립모드에서도 모칩과 차체제어모듈(BCM)을 연결하는 우회 경로를 따로 설계해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이번 K5 앱 개발은 업체 간 협업을 위해 일정 부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선택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진단 기능을 넣기 위해 자동차회사가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밀 코드(mil code)’를 앱 개발자에게 일부 공개했기 때문이다. 밀 코드는 차량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를 거쳐 고장 여부를 계기판에 알리는 전자신호로 보통 알파벳 한 개와 네 자리 숫자로 구성돼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