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강원 평창군에 있는 오리온 감자원료연구소에서 권한기 소장이 현재 새롭게 품종을 개발 중인 포카칩 스낵용 감자를 소개하고 있다. 평창=김선미 기자
저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 감자입니다. 흔한 식용(食用) 감자가 아니라 스낵용으로 품종이 개량된 감자죠. 더 정확히는 국내 생감자 스낵 시장의 1위(점유율 63%·AC닐슨 조사 기준)인 오리온 생감자 스낵(‘포카칩’과 ‘스윙칩’)의 원료가 되는 감자입니다. 지난달에는 포카칩과 스윙칩을 무려 109억 원어치나 사 드셨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오리온 생감자 스낵의 월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에요. 우리 농산물로 건강을 챙기려는 ‘착한’ 친환경 트렌드가 오늘의 영광을 있게 한 듯합니다.
제 고향은 강원 평창군에 있는 오리온 감자원료연구소. ‘포카칩’ 탄생(1988년) 한 해 전인 1987년 23만1000m²(약 7만 평) 땅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민간 감자연구소입니다. 일반 감자는 울룩불룩 못생긴 게 많은 데다 1.34∼2.74mm 두께로 썰어 183도에서 2, 3분 튀기면 색깔이 거뭇하게 변했거든요. 연구원 10여 명이 실험에 매달려 2001년 비로소 제가 개발됐습니다. 어엿하게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제 토종 감자 품종 이름은 ‘두백’입니다. 둥글수록 미인이란 소리를 듣는 제 허리둘레는 4.5∼9.4cm. 튀겨도 고유의 색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실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고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이 20여 년간 절 극진히 돌봐주셨습니다. 연구소 설립 당시 동양제과공업 부사장이었던 담 회장은 “외국에서 감자를 수입하지 말고 국산 종자를 개발해 토종 스낵을 키우라”고 하셨죠. 전국 계약재배 농가 1000여 곳에서 생산되는 국산 감자가 이제 2만 t 규모입니다.
오리온에서는 생감자 스낵사업을 ‘생물사업’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기후변화에 좀 예민합니다. 달걀 대하듯 지극 정성으로 다뤄야 하는 데다 매출 대비 이익이 적어(지난해 오리온 생감자 스낵 국내 매출 850억 원, 영업이익 28억 원) 버림받을 수 있었던 저를 담 회장은 믿고 거둬주셨죠. 그 덕분에 지난해 해외 매출이 386억 원이었습니다.
수준급 스키 실력으로 평소 인근 용평 스키장에 왔다가 연구소를 방문하는 담 회장은 언젠가부터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리온은 지난해 말과 올 초 차례로 온미디어와 베니건스를 매각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유동성 5000억 원을 갖추고 본업인 식품에 충실하며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오리온의 행보에 가산점을 줬습니다. 1년 전 국내 식음료 기업 중 시가총액 기준으로 7, 8위이던 오리온은 4일 현재 시가총액 2조2006억 원(주당 36만9000 원)으로 CJ제일제당에 이어 2위로 떠올랐습니다.
화교 3세인 담 회장은 “오리온은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간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국 만주로부터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설과 영국 상선을 타고 온 네덜란드 선교사가 들여왔다는 설이 분분한 저, 감자…. 아마 ‘오리온’의 옷을 입은 ‘메이드 인 코리아’ 생감자 스낵으로 앞으로 해외 나들이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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