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이 줄줄이 좌초될 위험에 처하자 채권 금융회사들이 부실한 영세 시행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단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터미널 시행사인 파이시티 및 파이랜드를 시작으로 제2, 3의 부실 시행사를 조만간 추가로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기로 했다.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채권단 주도로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하기로 해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굳어졌던 부동산 개발사업의 ‘시행사-시공사’ 구도가 ‘금융권-시공사’로 점차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파이시티-파이랜드에 대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낸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11일 “이번 파산신청은 그동안 시행사가 쥐고 흔들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의 판도를 채권단이 쥐고 가는 첫 신호탄”이라며 “앞으로도 부실한 시행사는 하루 빨리 정리해 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은 사업 진척이 되지 않는 부동산 개발사업장을 중심으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부실 시행사를 추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현재 부동산시장 침체 양상을 감안하면 추가 파산신청은 시간문제다.》 채권단의 이 같은 방침은 부동산 경기침체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높은 만큼 PF 대출 부실이 생길 때마다 대손충당금을 쌓았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채권단이 전면에 나서 리스크 관리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우리은행 9조 원, 국민은행 8조 원, 신한은행 7조 원, 하나은행 2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 PF사업 관리 대폭 강화
채권단은 법원이 부실 시행사의 파산신청을 받아들이면 현행 시행사와 시공사로 이어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구도에서 시행사를 빼고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로 시행사의 자리를 대신할 계획이다. 그동안 시행사 주도로 성행한 부동산 PF 대출은 사업 과정의 현금 흐름 분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건설사의 지급보증에 기대어 사업을 진행해 ‘무늬만 PF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자본력이 취약한 시행사가 끌어온 부동산 PF사업은 근본적으로 취약했다”며 “최근 하나금융지주에 편입된 하나다올부동산신탁을 통해 사업성을 면밀히 분석해 ‘시행사 리스크’를 원천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또 워크아웃 등 구조조정 수단을 활용해서라도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이 같은 채권단의 행보에 건설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시행사 관계자는 “이번 파산신청은 시공사인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 등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힘들어진 특수한 사례”라며 “나머지 대부분 사업장은 메이저 건설사가 많이 참여해 파산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채권단이 강수를 두는 까닭
채권단이 이처럼 강수를 두는 것은 PF 대출의 부실이 상당 기간 은행권 수익구조를 악화시키는 것을 넘어 개인투자자에게 전이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것이다.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양재동 복합터미널 사업에 투자한 ‘하나UBS클래스원특별자산펀드’의 순자산은 10일 기준 3826억 원으로 설정액인 3900억 원 대비 74억 원의 평가손실을 내고 있다. 이 펀드는 12일 수익자 총회를 열어 펀드의 만기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기가 연장되면 채권단의 구상대로 새로운 시공사와 함께 사업이 재추진되고, 부결되면 사업이 물거품으로 끝나면서 개인 고객은 평가손실이 난 만큼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 이 사업에는 부동산 공모펀드를 비롯해 우리은행 교원공제회 농협 등의 채권단이 8720억 원을 투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펀드 투자자들이 그동안 두 차례 만기를 연장했듯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번에도 연장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좀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새로 선정할 시공사의 PF 대출 지급보증을 통해 대출채권 50%를 우선 회수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받는 방식으로 PF 구조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펀드나 특정금전신탁 등을 통해 투자한 개인투자자들도 원금의 50%는 일단 회수할 수 있고 추후 분양을 통해 나머지 원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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