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기반 다진 제조분야 명장… 그가 말하는 ‘한국에서 명장으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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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대한민국 최고 기능인을 의미하는 ‘명장(名匠)’의 명단이 13일 발표됐다. 올해도 조선, 주조, 금속, 철도, 목재, 공예, 조리 등 각 분야에서 21명이 선정됐다. 정부는 산업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기능 인력들을 독려하고 이들의 노하우를 육성, 승계하기 위해 1986년부터 명장 제도를 운영 중이다. 정부는 최근 뿌리산업(제조) 분야 명장들을 향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수준으로 우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정작 명장계 일각에서는 “명장 제도는 껍데기뿐”이란 지적이 나온다. 명장을 뽑기만 할 뿐 이들을 산업계 발전에 제대로 활용하지도, 기술승계를 지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995년 명장으로 선정된 한 기능 장인의 사례를 통해 명장관리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대통령이 말했지 “당신이 국가 보배”라고
그런데 퇴직 후엔 아무도 관심 안가져
청춘 바쳐 쌓은 기술, 쓸 곳이 없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yankeey@donga.com

“가만 보자. 어디 있을 거야. 여기 어디 안쪽에다 넣어뒀는데….”

안방에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서도 그는 여전히 장롱 이불장 아래를 뒤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을 장롱서랍 안에 봉인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10분여가 흘렀을까. 그가 마침내 “찾았다”며 ‘그것’들을 들고 나왔다.

딱딱하고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끼워진 종이 두 장. 각각에는 ‘표창장’과 ‘명장증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황금빛 봉황 문양이 새겨진 표창장에는 그의 이름과 김영삼 대통령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명장증서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귀하는 기능인 최고의 영예인 명장으로 선정되었기에 명장 칭호를 부여하고 이 증서를 수여합니다.’

그는 함께 받은 것이라며 파란 융단으로 감싸진 작은 상자도 내밀었다. 뚜껑을 열자 태극무늬 휘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휘장 가운데 붙어 있어야 할 태극문양은 추레한 본드 자국만 남긴 채 똑 떨어져 있었다. 옛 영광의 상징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놔둬. 그런 건 다 의미 없어.”

김만홍(가명·59) 씨. 그는 1995년 금속주조분야 명장이었다. 기아자동차 합금파트에서 23년간 주조를 담당했던 그는 만 44세에 ‘명장’ 자격을 얻었다.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일해 오면서 해당 분야 기술발전에 크게 공헌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이름.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명장은 왜 뽑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다. 그는 어째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20년 한우물, 명품 명장 탄생

김 씨가 금속주조 분야에 발을 들인 건 그의 나이 24세 때다. 군 제대 후 잠시 일할 생각이었던 기아차가 그의 평생직장이 됐다.

“원래 근무시간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였는데 오버타임으로 2시간을 더 일하곤 했지. 주조는 용탕(쇳물) 때문에 연속성이 있어야 되거든. 신입 때는 오후 7시 반부터 그 다음 날 오전 8시 반까지 이어지는 야근도 많이 했어. 그래도 힘든 줄 몰랐어, 그때는.”

좋은 시절이었다. 회사 규모는 날로 커졌고 월급도 나날이 많아졌다. 그는 합금 주조 파트에서 자동차 커버, 미션케이스를 만들었다. 김 씨는 “그때만 해도 주조에서 수작업 비중이 높았는데, 내 주조 노하우로 불량 없는 제품이 척척 나올 때 가장 신바람이 났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한 달이면 몇십만 대분의 제품을 만들었다. 제휴 관계에 있던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 3개월씩 기술연수도 받았다. 마침내 그는 경합금 파트의 230여 직원을 총괄하는 기술주임 자리에까지 올랐다. 신입사원을 뽑고, 교육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명장으로 선정된 것도 이맘때였다.

○‘기술 봉사’의 꿈

하지만 빛나는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온 것이다.

“누군가는 떠나야 하는 분위기였어. 나도 예외가 아니었지. 다행히 난 벌어놓은 돈도 있고 먹고살 만했거든. ‘그래, 선배들이 떠나줘야지’ 싶었어.”

그가 이 같은 결정을 한 데에는 20년 이상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쌓인,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한몫했다.

“나는 충남 아산공장에,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에 있었어.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청춘을 바쳤어. 이제는 같이 지내자, 싶더라고.”

김 씨는 기아차를 퇴직했다. 그래도 큰 아쉬움은 없었다. ‘서울 근교의 중소기업에서 기술 지도를 하자’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어. 대기업 사람들은 경험이 많고 학습할 기회도 많잖아. 중소기업 공장에 가 보면 부족한 부분이 한눈에 딱 보이거든. ‘왜 저걸 저렇게 할까’ 싶단 말이야. 근데 중소기업들은 그것을 못 봐. 보여도 해결법도 모르고.”

명장을 뽑기만 할뿐 산업 발전에 활용 못해
“이젠 다 까먹어 전수해주고 말 기술도 없어”


○‘재활용’ 않는 정부, “명장 왜 뽑나”

하지만 이런 소망은 퇴직 1년도 지나기 전에 보기 좋게 깨졌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서 그가 일할 중소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꼭 월급 받기 위해 일할 생각은 없었어. 그저 하나의 봉사개념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내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이 말이야. 내가 한국산업인력공단에도 얘기 많이 했어. 그러나 달라지는 게 없더라고. 퇴직하고 나니 명장이란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었어.”

김 씨는 “정부는 도대체 명장을 왜 배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000만 원이 넘는 상금을 주고 해외산업시찰까지 보내면서, 어째서 ‘재활용’을 위한 시스템은 마련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어렵게 힘들게 관문을 통과해서 배출됐으면 이 사람들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어? 자영업을 하는 명장들은 그래도 좀 나아. 하지만 기업에서 일하던 명장은 퇴직하면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 모든 것이 일회성 행사에서 그치는 거야. 모든 게….”

그는 “이젠 다 까먹고 전수하고 말고 할 기술도 없다”며 “명장들에게 연금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체나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장 500명 시대, 현장직은 극소수

퇴직 13년째를 맞는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많지 않다. ‘매일 보며 살고 싶었던’ 아내는 그가 퇴직한 지 3년 만에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떴다. 두 딸은 시집을 갔다.

퇴직 직후에는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장만한 건물이 3채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건 그가 사는 집 한 채뿐이다. 퇴직 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주식투자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그는 요즘 경기도 외곽 시장통에 있는 20평짜리 2층 주택에서 1층을 세 놓아 생활비로 쓰고 있다. 1층 오른쪽이 생선가게, 왼쪽이 아동복 가게다. 두 가게 월세와 연금을 합치면 한 몸 먹고사는 데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을 해야 물 한 잔도 시원하고 주말도 달콤한 거 아니겠어. 하지만 내겐 그게 없는 거야. 일할 곳이 없으면 외로움은 둘째 치고 사람이 나태해져. 쉬어도 ‘맛’을 모르지. 인간으로서 느낌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야.”

김 씨는 “이제 명장 같은 건 다 잊었다”고 했다. “가진 게 없으니 편하다”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2010년 현재 국내 뿌리산업 분야 명장 수는 70명. 1986년 이후 양성된 전체 명장 수는 496명에 이른다. 이 중 현직에 있는 명장은 ‘극소수’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전통 제조강국 독일-일본의 ‘최고 기능인’ 활용은?▼
독일 마이스터 육성비용 정부서 지원… 은퇴후 후진 양성
일본 최소 15년 경험 쌓아야 名工… 연차별 업무 차별화


단조, 주물, 금형, 용접과 같은 분야는 제조업 강국을 위한 필수기술이다. 정부가 이 분야를 ‘뿌리산업’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뿌리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통의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독일과 일본은 각각 ‘마이스터(Meister)’와 ‘명공(名工)’이라는 최고의 기능인 선정 제도를 갖추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정하는 ‘명장’과 비슷하지만 지원 규모와 육성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마이스터와 명공의 기술을 후대에 전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책을 갖추고 있다.

독일은 젊은 기능인을 마이스터로 육성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을 대부분 정부가 지원한다. 또 마이스터가 차세대 기능인 육성을 위해 기술교육을 할 경우 소요 비용 역시 정부가 부담한다. 이 같은 제도를 통해 마이스터는 자연스럽게 생계유지를 할 수 있게 되고, 기업으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기능 인력을 육성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마이스터가 은퇴하더라도 노하우와 기술을 후세에 전승하겠다는 의도”라며 “지속적인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한국도 기술전수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1960년대부터 ‘직업능력개발촉진법’을 제정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기능인력 육성 정책을 실시해 왔고, 그 결과 현재까지 5000명이 넘는 명공을 배출했다. 명공은 관련 분야에서 15년 이상 경험을 쌓은 숙련된 기술 인력으로, 나이가 35세 이상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명공은 기업체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소학교와 기술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한다.

가톨릭대 경영학부 김기찬 교수는 “단순히 명장 지정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차세대 명장을 길러내기 위한 경력개발 경로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단순 근로자가 기사가 되고, 기사가 명공이 되는 일본의 시스템처럼 연차별로 업무의 차별화를 통해 기술 인력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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